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배 속에 아가 있어요?” 돈을 받던 여사장님이 내 배를 보며 물었다.
“임신부는 무료예요. 엄마는 레몬주스 마실 거죠?”
임신부를 생각해 주는 그곳의 배려가 레몬주스보다 상큼했다. 그 덕분에 여행 내내 행복했다.
그런데 휴가지에서 돌아온 일상은 첫날부터 그 꿈같던 기억에 찬물을 끼얹었다.
출근길 아침, 여느 날처럼 정류장에서 버스에 오르려는데 누군가 내 팔을 치며 쌩하고 앞서 갔다. 10cm가 넘는 킬힐에 허리를 조인 플레어스커트 차림의 뒷모습이었다. 뒤뚱거리는 내 걸음이 답답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먼저 올라탄 그녀가 잽싸게 앉은 곳은 임신부 전용인 ‘분홍의자’. 눈에서 불이 났다. 배를 내밀고 시위하듯 그 앞에 섰다. 그녀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혼자 씩씩대 봤자 태교에 안 좋겠다 싶어 ‘겉으로 보기엔 알 수 없는 초기 임신부일지도 몰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버스 좌석은 3종류로 나뉜다. 일반석, 노약자석, 그리고 임신부석. 30여 석 중 딱 한 좌석이 임신부석인데, 여기에는 분홍 커버에 아이를 가진 엄마를 그린 이미지까지 넣어 ‘임산부 배려석’이란 표시가 크게 붙어 있다(사실 ‘임산부(姙産婦)’는 아이를 가진 임부와 아이를 낳은 산부를 함께 통칭하는 말이라 자리에 붙인 이미지에 맞게 표현한다면 ‘임신부(姙娠婦)’가 맞다).
어떻든 나는 임신한 뒤론 유독 그 좌석만 10배쯤 확대돼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매일 출퇴근길 버스에 오르는 순간 희비가 엇갈린다.
며칠 전 퇴근길엔 정말 화가 났다. 예고 없이 장대비가 퍼부어 도로는 주차장이 되고 버스도 연착됐다.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오를 수 없어 몇 대를 그냥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빗속에서 20분 넘게 서 있었을까. 드디어 한산한 버스가 도착했다. 분홍의자도 빈 채였다.
반가운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려는데, 또 새치기를 당했다. 또 킬힐의 그녀에게. 그녀는 또 냉큼 분홍의자에 앉아 버렸다.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조금 뒤 빈자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막말 만삭녀’로 인터넷 동영상의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굳이 임신부석에 앉는 여자들은 ‘초기 임신부겠거니’ 여기면 된다. 감정조절이 안 될 정도로 화가 치밀 때는 젊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을 때다. 왜 이리 임신한 남자가 많은지(?).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 앞에 서 있는 ‘부른 배’를 힐끔거리면서도 일어날 생각은 않는다. 남자들에게 자리 양보를 받으려면 D라인보다는 쭉쭉빵빵 S라인이 유리한 건가(^^).
지하철 상황은 버스와 다를까 싶어 지하철로 출퇴근했다. 열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리니 승객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저 임신부는) 누구 앞에 설 것인가.’ 시선들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러시안룰렛도 아니고, 내가 발걸음을 하면 누군가 운 나쁘게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듯한 분위기. 걸음 내딛기가 망설여졌다.
그 찰나의 시간에 열차 안을 둘러봤지만 장애인 임신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들을 위한 ‘교통약자 배려석’ 일곱 자리도 ‘약자 아닌 사람’으로 가득했다. 나는 결국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출입문 쪽에 소심하게 기대섰다.
“뭐 자리 하나 갖고 그러느냐…” 할 수 있다. 나도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싶어 예비 엄마들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니 출퇴근길에 당한 임신부들의 수모와 서러움이 가득했다.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인에게 욕먹은 사연, 만삭 임부에게 아무도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아 배 덜 나온 자기가 양보했다는 사연, 자리 양보 부탁했다가 싸움 날 뻔한 사연….
강혜승 기자
서울시가 시내버스에 임신부 전용석을 마련한 건 2009년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하철에도 도입했다. 노약자석이 ‘노인석’으로 인식돼 따로 마련한 배려석이다. 시행 4년째지만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배부른 임부를 봐도 노인은 연장자의 권한으로, 아저씨는 뻔뻔함으로, 아줌마는 먼저 애 낳은 선배의 권위로, 젊은이들은 무관심으로 분홍의자를 지킨다.
승객 여러분! 임신부석은 임신부에게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