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출발점인 ‘선경’을 세우고 발전의 토대를 닦은 사람은 최종건 회장(1926∼1973)이다. 하지만 최종건 회장 타계 이후 선경을 SK그룹으로 키워낸 이는 그의 동생인 최종현 회장(1929∼1998)이다. SK그룹 사사(社史) 제목이 ‘SK 50년 패기와 지성의 여정’인데 이는 도전적이었던 최종건 회장의 패기와 일찍 미국 유학을 다녀온 최종현 회장의 지성이 시너지 효과를 내 지금의 SK그룹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감안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 창업 1세대 중에 최종건 회장과 같이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자가 많지만 최종현 회장은 체계적인 경영을 했다는 측면에서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당시로서는 낯선 경영용어인 ‘조정’에 대한 강조다.
1962년 최종현 회장이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처음 일한 곳은 형이 세운 선경직물이었다. 1970년 선경직물 사장이 된 최 회장은 적자였던 회사를 살리기 위해 2300명의 직원을 1200명으로 줄이는 구조조정부터 단행했다. 이후 선경직물 수원공장의 생산성은 좋아졌지만 불량품이 줄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 회장은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을 불러 불량품 문제에 대해 상의했다. 당시 선경직물의 생산 공정은 생산1부의 제직 공정과 생산2부의 후처리 공정으로 이뤄져 있었다. 2개 부서를 거쳐서 완제품이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생산1부장과 생산2부장은 모두 성실하고 능력도 있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두 부장이 각자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사전협의나 정보교환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오히려 두 부장의 대립과 반목이 심해 불량품이 생기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최 회장은 공장장과 협의를 한 뒤 고심 끝에 고참 부장인 생산2부장을 본사 이사로 보내고 그 자리에 생산1부장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임명했다. 불량품의 발생이 부서 간 ‘조정’이 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수원공장의 불량품 발생률은 크게 떨어졌다. 생산1부장과 새로운 생산2부장이 사전협의를 하며 불량품 발생 원인을 줄여 나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나중에 ‘조직운영에 있어서 조정(Coordination)의 중요성’이라는 글을 사보에 쓰며 이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조정을 잘한다는 것은 눈에 잘 안 보이는 요소이기 때문에 우리가 등한시하기 쉽다.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요소지만 회사의 실제 운영에는 상당히 크게 작용하며 절대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말로만 조정을 잘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각 부서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조정 관련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상급자일수록 자신을 보좌하는 사람들끼리의 조정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관리자가 조정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실행하느냐에 경영 효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창의적인 경영 기법이라 할 만하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sublim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1호(2012년 8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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