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본능 공포와 학습 공포로 나뉜다. 뱀을 보거나 비명을 들으면 본능 공포를 느낀다. 태어나기 전부터 뇌에 내재된 자위(自衛) 본능이다. 학습 공포는 자극의 요인과 관련된 스토리를 떠올려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다. 본능 공포는 자극 요인이 사라지면 바로 없어지지만 학습 공포는 뇌를 계속 자극해 오래 지속되고 더 큰 무서움을 갖게 만든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TV 브라운관을 기어서 빠져나오는 영화 ‘링’을 보고 난 뒤 한동안 TV만 쳐다보면 섬뜩해지는 것은 학습 공포 때문이다.
▷지상파TV 3사의 납량특집 공포물이 해마다 줄어들다가 올여름엔 단 한 편도 없었다. 9년 만에 부활한 납량특집의 원조 ‘전설의 고향’도 2년을 못 버티고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은 케이블TV에서 선혈이 낭자하고 사람의 장기(臟器)가 예사로 노출되는 잔혹한 미국 범죄 드라마에 익숙해 있다. 표현 수위에 제약을 받는 지상파TV의 공포물은 그리 무섭지 않게 받아들인다. 특수 분장과 컴퓨터그래픽이 많아 제작비 부담은 크고, 으스스한 분위기 탓에 광고주들이 협찬을 꺼려 납량특집은 이래저래 천덕꾸러기 신세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