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한 달 동안 진행된 연수 강의는 상담센터소장, 피해 학생 학부모회장, 변호사, 대안학교 교장 등 학교폭력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전문가들이 맡아 효과적이고 실제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은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 문재현 소장의 ‘평화샘 프로젝트’로, 학교폭력에 침묵하는 다수의 책임을 역할극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력자’ ‘동조자’ ‘소극적 조력자’ ‘방관자’ ‘방어자’ ‘소극적 방어자’도 있다.
피해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100원으로 어떻게 사 와….
동조자: 사 오라면 사 와!
조력자: (피해자를 손가락질하며) 크크크.
(이때 소극적 조력자는 그 상황을 지켜보며 속으로 재밌다고 생각한다. 방관자는 힐끗 쳐다보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그때 방어자가 머뭇거리며 등장한다.)
가해자: 너 죽고 싶냐? 네가 사 올래?
(소극적 방어자는 이 광경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도 이렇게 역할극을 해봤다. 첫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한 명인 경우, 두 번째 단계에서는 가해자가 여럿인 경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방어자가 여럿인 경우를 설정한다. 역할극에서 나는 피해자를 맡았다. 연극이란 걸 알면서도 가해자들이 한마디 던질 때마다 움츠러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도 방어자가 많을수록 힘을 얻게 된다는 걸 느끼게 됐다.
당장 반 아이들에게 역할극을 시켜 봤다. 평소 연극을 할 때는 역할 분담을 아이들 자율에 맡기는데, 이번에는 내가 관여했다. 못된 역할을 서로 안 하려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저요! 저요!”
반 아이들 대부분이 가해자를 희망했다. 충격이었다. 피해자는 서로 안 하려 해 역할을 나누는 데 애를 먹었다. 역할극을 끝내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피해자 역할을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가해자랑 동조자 조력자들이 저한테만 뭐라고 하니까 무서웠어요. 그런데 나중에 방어자들이 늘어나니까 속이 시원했어요. 가해자를 혼내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혼내 주고 싶었어요?”
“네. 연극인데도 가해자가 너무 밉고 싫었어요. 여러 명이 제 편을 들어주면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가해자 역할은 어땠어요?”
“처음엔 재밌었어요. 그런데 방어자들이 생기면서 피해자 편을 드니까 짜증났어요.”
“방관자 역할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저는 별로 상관하고 싶지 않았어요. 가해자가 무서웠거든요.”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
며칠 뒤 점심시간, 방관자 역할을 했던 마르고 여린 여자아이가 내게 달려왔다.
“선생님! 우리가 지켜 줬어요!”
“응? 뭘? 누굴?”
“성운(가명)이가 옆 반 애한테 놀림을 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반 애들이 ‘하지 마라’라고 얘기하고 성운이를 데려왔어요!”
자랑스럽고 뿌듯한 표정으로 승전보를 전하는 그 아이는 이제 방관자가 아니라 당당한 방어자의 모습이었다.
장민경 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