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화점 현장서 본 가을·겨울 스타일바로크 낭만주의 화려한 물결, 불황 속 여심 파고들어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과 갤러리아 명품관 매장에서 올 가을겨울 시즌 따끈한 신상품을 엄선해 찍었다. 윗줄 왼쪽부터 알렉산더 매퀸의 레이스 레드 드레스와 데렉 램의 블랙&화이트 자카드 투피스, 버버리 프로섬의 트렌치코트, 알렉산더 매퀸의 헤로인백과 부티, ‘장동건 스타일’의 톰 브라운 패딩과 재킷. 아랫줄 왼쪽부터 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의 징 박힌 플랫슈즈, 갤러리아 편집매장 G 스트리트 494의 그린 컬러 톱과 드레스, ‘김남주 백’으로 인기 몰이 중인 헨리 베글린 와인색 신상품.
19일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1층.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는 날씨에도 당당하게 1층 문 앞을 즐기는 마네킹 3개가 있다. 코듀로이 트렌치코트에 황금 단추, 리본 벨트, 동물이 그려진 셔츠…. ‘버버리 프로섬’의 가을·겨울 시즌 신상품이다.
20일 찾은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도 이미 가을과 겨울이 스며들고 있었다. 화려한 프린트가 돋보이는 ‘랑방’의 레드 드레스, 세련된 벨벳 소재를 뽐내는 ‘발망’, 보송보송한 스웨터와 가죽 재킷까지 날씨가 빨리 추워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의 백화점은 끝이 없는 보물창고 같다. 화려한 꽃무늬 선드레스는 구석으로 밀려나고 매일 매일 새로운 신상품이 얼굴 없는 마네킹을 주인공처럼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요맘때 백화점이 즐거운 또 다른 이유. ‘입을 수 있는’ 옷이 많다는 점이다. 백화점은 말 그대로 옷을 파는 곳이니 파리, 밀라노, 뉴욕 런웨이에서 모델들이 선보인 화려한 패션을 어떻게 기성복으로 소화했는지 보여준다.
김남주와 장동건, 2NE1
“25장 오더(주문)했는데 이거 한 장 남았어요. ‘완판’된 거죠.”
에비뉴엘 4층 발망 매장. 남성용인지 여성용인지 헷갈리는 재킷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매장 점원이 귀띔했다. 폭염과 폭우, 높은 습도로 지칠 대로 지친 이때에 벌써 이 300만 원대 블랙 재킷이 다 팔렸다는 것이다. 보이프렌드 재킷처럼 박시한 느낌에 골드 단추가 눈에 띄는 세련된 재킷이었다. 트렌드 세터들의 가을·겨울 신상품 확보 전쟁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매장 관계자는 “영화배우 김혜수 씨가 입은 니트 롱 드레스도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 트렌드의 집결지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에서도 발망의 인기는 멈출 줄 몰랐다. 다른 브랜드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가 주로 수입되지만 어떻게든 입으려고 수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EAST) 오성택 과장은 “연예인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라며 “한번 입고 나오면 다음 날 금세 팔려나간다. 사이즈에 맞게 고쳐 입으려는 수선 수요가 제일 많은 브랜드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남주 파워’도 여전했다. 이스트 2층의 편집매장 ‘리버티’에는 김남주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시누이에게 빼앗겼던(?) 가방 ‘헨리 베글린’의 신상품이 눈에 확 띄게 전시돼 있었다.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다는 그 가방이다. 드라마에 나왔던 레드 가방에 이어 올가을에는 손잡이까지 와인 빛깔로 물들인 신상품이 인기가 있을 것 같았다. 딱딱한 사각백과는 스타일도 무게도 딴판이다. 정말 가벼웠다. 이 가방의 인기 덕에 갤러리아는 편집매장 리버티를 아예 헨리 베글린 단독 매장으로 바꿀 계획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도 올해 5월 헨리 베글린 매장이 들어섰다.
남성 패션에서는 장동건 바람이 거세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그가 자주 입었던 ‘톰 브라운’은 올가을 백화점의 기대되는 유망주. 블루, 화이트, 레드의 삼색기가 이 브랜드의 트레이드마크다. 에비뉴엘 5층에 들어온 편집매장 ‘10 꼬르소 꼬모’에는 톰 브라운의 패딩 재킷과 네이비 재킷이 눈에 띄었다. 톰 브라운은 이번 시즌 날씬한 남성상인 펑크족과 근육질을 자랑하는 운동맨 두 그룹의 스타일을 위트 있게 선보이고 있다.
올 가을·겨울에는 여성스러운 디테일을 잘 챙겨 봐야 한다. 물결이 치는 듯한 러플 장식이 돋보이는 펜슬 스커트와 리본 벨트가 인상적인 버버리 프로섬(왼쪽). 돌체앤가바나(오른쪽)는 바로크 시대 여왕이 울고 갈 만한 화려한 황금 자수와 머리장식을 선보였다. 인터패션플래닝·돌체앤가바나 제공
이스트 2층 랑방 매장. 여자를 더 여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브랜드 랑방에서 붉은 꽃장식 프린트가 아름다운 레드 드레스가 눈에 띄었다. 드레이프로 장식된 레드 드레스도 있었다. 몸매를 여성스럽게 만들어주는 디자인이었다. 올 가을·겨울 랑방은 좀 더 특별하다. 디자이너 알베르 엘바즈가 랑방을 맡은 지 10주년이 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랑방 매장 관계자는 “가을이지만 선명한 레드, 옐로 같은 색감이 살아 있는 옷이 입고되고 있다”며 “러플, 페플럼(허리 밑단의 장식) 같은 여성스러운 장식과 스쿠버다이버 옷 느낌의 심플한 라인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랑방 매장의 어린이 컬렉션에도 엄마와 세트로 입을 수 있는 레드 트위드 원피스가 있었다.
그동안 가을·겨울에는 언제나 블랙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다르다. 매장마다 색색의 옷들이 전시돼 봄·여름 시즌 느낌이 나기도 했다. 스텔라 매카트니 매장에서는 청량한 블루가 돋보였다. 다양한 컬러 중에 단연 가장 많이 보이는 색은 레드와 그린이었다.
캐주얼 매장에서도 레드와 그린 열풍을 엿볼 수 있었다. 갤러리아 명품관 편집매장 ‘G스트리트 494’의 바이어 최윤정 대리는 “올 가을·겨울 시즌에는 레이어드 패션(겹겹이 입는 옷)을 따뜻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바이올렛, 루비레드, 포리스트 그린, 머스터드, 옅은 그레이, 뉴 블랙 등 6가지 색이 주목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G스트리트 494 매장에서는 ‘데이비드 제토’의 그린 계열 레오파드 프린트 톱과 드레스가 돋보였다. 그린, 레드 등의 색깔 가죽 재킷은 벌써 다 팔려서 재입고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바로크 여왕이 돌아왔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비웃듯 올가을 패션에는 가장 화려한 시대가 수놓여 있었다. 자칫 거실 커튼으로 옷을 만들었느냐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이다.
바로크 스타일을 가장 화려하면서도 낭만적으로 풀어낸 브랜드는 ‘돌체앤가바나’다. 검은색 바탕에 금실로 수놓은 화려한 드레스, 보석과 자수가 빛나는 머리 장식이 밀라노 컬렉션에 등장했다. 실제로 에비뉴엘 4층 매장에 가보니 ‘바로크 낭만주의’ 느낌을 기성복의 디테일로 살린 제품들이 이제 막 첫선을 보이고 있었다. 도트 스카프와 블라우스, 리본이 달린 니트,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스커트…. 특히 블랙 볼레로 재킷에 달려 있는 동그란 보석장식 단추는 심플하면서도 화려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디테일을 자랑했다.
에비뉴엘 4층 편집매장 ‘엘리든’에서 찾아낸 데릭 램의 투피스도 바로크 시대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페이즐리 무늬의 자카르 소재가 눈에 띄었다.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 덕분에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느낌이 들었다. 랑방 매장에서도 골드 니트에 자카르 무늬가 돋보이는 드레스를 전시해 놓았다. 발망도 러시아 황실문양의 자수와 바로크 스타일의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스텔라 매카트니 매장에는 특이하게도 레이스 장식이 프린트된 드레스와 셔츠가 있었다. 레이스가 불편한 활동적인 여성들에게는 부드럽고 신축성 있는 이 프린트 셔츠가 딱인 듯했다.
소재 자체가 화려함을 주는 아이템도 많았다. 대표적인 소재는 벨벳. 발망의 레드 벨벳 재킷에는 잔잔한 무늬가 있어 고급스러워 보인다. 버버리 프로섬의 코듀로이 트렌치코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황금 단추의 화려함, 리본 벨트의 여성스러움, 커다란 주머니의 캐주얼함이 오묘하게 잘 섞여 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