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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쟁론]자기소개서 대필로 도마 오른 입학사정관제

입력 | 2012-08-24 03:00:00


《 대학 수시모집을 앞두고 자기소개서 대필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를 토대로 학생을 뽑는 입학사정관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도입 초기부터 찬반 논란이 치열했지만 이제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취지와 방향성을 살려 제대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근본적인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맞섭니다. 어느 편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제도를 둘러싼 솔직한 문제 제기와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동아쟁론 5회의 주제는 ‘다시 생각해보는 입학사정관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 “입학사정관제 폐지해야” ▼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

입학사정관제는 크게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 면접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바로 제도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자기소개서가 대필되고 교사의 추천서도 거짓으로 포장되는 일이 어디 하루 이틀 일어났던 일인가. 대한민국 입학사정관제는 엉망진창 일보 직전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도입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는 점에 있다. 강력한 신뢰가 우선되어야 할 입학사정관제는 학연·지연·혈연 등의 온정주의가 깊이 뿌리 내린 우리 실정에는 애초부터 맞는 것이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인연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제자에게 추천서를 써 줄 때 제자의 있는 그대로의 장단점을 가감 없이 써 줄 교사가 몇이나 있겠는가. 애초부터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정직한 추천서와 자기소개서가 힘들다고 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홈페이지에 가 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대입전형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라고 설명해 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도입 당시 40개 대학이 채택했던 이 제도를 여러 가지 당근과 채찍을 가지고 밀어붙여 내년 입시에서는 무려 125개 대학이 정원의 13.5%인 약 4만8000명의 학생을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선진화’란 게 과연 무엇일까?

십중팔구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현재 미국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의 추천서 제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우리 국민만 모르고 알 사람은 다 안다. 강력한 신뢰에 의한 추천서 제도가 한때 미국에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퇴색했다. 특히 대학 입시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경우가 2009년 명문 일리노이주립대 어배나-섐페인 캠퍼스의 부정 입학 사건이다. 이 학교는 학생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데 학생들은 거짓으로 작성된 추천서나 자기소개서, 에세이(우리식으로 치면 논술)를 제출했고 돈과 권력을 쥔 주내 유명 재력가들은 입학사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하고 청탁을 해 빚어진 대형 부정 입학이었다.

시카고트리뷴이 특종 보도한 이 사건에는 무려 800여 명의 학생이 연루되었으며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일리노이 주 유력 인사의 자녀와 대입 관련자들이었다. 그 전해에는 일리노이 주의 한 고등학교 입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더는 선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하면 무조건 ‘선진 제도’인 양 따라한다. 어떤 제도든 그냥 좋아만 보인다고 무리하게 도입만 하면 안 된다. 그 나라만의 문화와 특수성을 감안해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고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안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입학사정관제의 또 다른 문제점은 학생의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취지가 겉으로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어도 실제로 실천이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평가자의 자의성과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고 평가자의 전문성도 아직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것을 피한답시고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제출한 모든 포트폴리오(봉사활동 수상경력 등)를 면밀히 검토하기보다 “이건 몇 점”, “저건 몇 점” 하는 식으로 점수화하는 극단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학생들은 계량화의 토대가 되는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원래 취지 중 하나인 공교육 정상화도 무력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한다. 입시 준비에 고달픈 학생들의 짐을 덜어 주는 게 아니라 스펙 쌓기를 위해 학원으로 달려가도록 만들고 있으니 그들의 어깨를 더 짓누르는 꼴이 돼 버린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를 흔드는 반칙 플레이와 부정직을 공식화 의례화하고 당연시하는 분위기까지 있는데 여기엔 어떠한 교육적 효과도 없다. 허위와 은폐 그리고 대필이 난무하는 대입 부정 분탕질 종합세트는 원래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그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보류해야 하거나 접는 것이 순리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
:: 필자 소개 ::

미국 보스턴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사회학 이론, 지식사회학, 종교사회학, 현상학이다. 주요 저서로 ‘정신차려 대한민국’, ‘뒤르켐&베버: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Order And Agency In Modernity’, ‘Interaction and Everyday Life’ 등이 있다.
▼ “운용의 묘 살리면 문제없어” ▼

백성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전 포스텍 총장

도입 5년째를 맞고 있는 입학사정관제 전형은 도입 초기부터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많은 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려했던 것보다는 비교적 큰 부작용 없이 여러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면서 꾸준하게 확대되어 왔다. 이 제도를 도입한 뒤 사교육이 줄었다는 보도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험 점수만 올려서 대학을 선택하고 학과를 결정하는 비교육적 비인간적 대학입시를 과감하게 청산해야만 공교육을 다시 세우고 사교육을 잠재울 수 있다는 인식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세계 대부분의 유명 대학이 채택하고 있는 매우 보편적이면서도 그 합리성이 입증된 입시 제도이다.

그 과정에서 자기소개서나 추천서가 중시되는 이유는 이른바 ‘점수 기계’들이 대학에 들어온 뒤 자기 적성과 맞지 않아 학업에 소홀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경우 해당 학생이나 학교로서는 엄청난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에 점수로만 학생을 뽑을 때에는 학생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후에는 응시생의 내면적 스토리를 알 수 있어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번에 사회 문제화된 것처럼 자기소개서 허위 작성이나 대필 같은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대학들은 진위를 가려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잘못된 서류로 인한 일차 피해자는 대학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서류위조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실제로 대필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대학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학생의 진면목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작성 과정에서 부모나 교사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크게 문제 삼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로 학생의 자질을 ‘검열’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학생의 적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면접이다.

국내외 많은 대학은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토대로 다각도로 질문을 해 진위를 가리려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이상 배출한 캘리포니아공대(일명 칼텍) 등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자기소개서 진위 판독을 위해 졸업생은 물론이고 재학생까지 나서 학생을 면접해 자기소개서 내용을 확인한다.

필자 역시 실제로 입시 현장에서 학생들을 뽑을 때 면접을 중시해 성공한 사례가 많다. 특정 과목은 우수했는데 다른 과목 성적이 떨어져 입학사정관들조차도 어렵다고 한 학생을 심층 면접을 통해 입학시킨 적이 있다. 담임교사가 조금 부정적으로 추천서를 쓴 학생이 있었는데 심층 면접을 통해 단지 교사의 가르침에 쉽게 수긍하지 않는 그의 개성 때문이었으리라고 보고 또 다른 잠재력에 점수를 줘 입학시켰다. 모두 성공적으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입학사정관제가 학생들에게 점수 외에 더 많은 입학 기준을 제시해 학생들을 다양하게 뽑을 수 있으므로 그렇지 않아도 많이 몰리는 (일류) 대학만을 위한 제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명문대가 아닌 대학들이 점수가 아니라 잠재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대학 발전의 전기로 삼을 수 있다. 이른바 ‘개천의 용’을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입학사정관제의 방향과 취지는 전적으로 옳다. 작은 부작용이 있다고 제도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느 제도나 아무리 취지와 방향이 옳다 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정직성과 신뢰가 없으면 안 된다.

대학에서 공부할 사람은 학원 강사나 학부모, 교사가 아니라 학생 자신이다. 학생의 진솔한 모습이 입학전형 중에 가감없이 대학에 전달되어 평가를 받아야 학생도 학교도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언젠가는 입학사정관제도가 모든 대학에 도입되고 정착되어 우리 입시제도의 근간으로 자리 잡아 가기를 바란다. 따라서 이번 일은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통과의례로 삼고 제도적 보완과 정책적 지원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백성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전 포스텍 총장
:: 필자 소개 ::

미국 코넬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장, 포스텍 5대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세라믹학회 회장(2009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위원장(2011년)을 지냈다. 현재 세계세라믹학술원 종신회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원자력진흥위원, 광주과기원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