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무감각 상태로 느끼는 ‘고민 없음’
젊은 세대 불안이 워낙 넓고 깊게 퍼지자 사회 전체가 그들의 불안감 해소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청춘이란 원래 다 그런 것이니 기죽지 말라는 절절한 위로의 메시지와 함께 “도전은 언제나 불안하다. 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식의 격려를 담은 책이 많다. 독설 코드도 등장하고 있다. 인기몰이를 하는 스타 영어 강사는 “슬럼프는 무슨, 유난 떨지 마라” “위로를 구걸하고 다니지 마라” 같은 독설로 나름 무기력에 빠진 젊은이들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다.
‘강남 스타일’은 장기하와 스타일이 다르지만 유사점이 있다. 섹시하고 유머러스한 키치(저속한) 이미지들을 강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즐긴다. 고상해지려, 잘나 보이려 애쓸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실용적인 쓰임새도 없지만, 폭염에 땀 뻘뻘 흘리며 유사한 패러디 동영상을 열심히 만들어 올리는 데 몰입돼 신나게 즐긴다. 세계적인 불안의 시대에 전 세계 젊은이들도 공감한 것은 아닐까.
위험사회 이론가들이 주장하듯 현대사회는 구조적으로 위험사회라서 늘 불안이 잠재하고 있으며, 급속하게 진행되는 변화를 혼란스럽게 겪는 과정에서 불안이 생기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무한도전과 무한질주를 종용하며 경쟁적 개인주의를 선택의 여지없는 가치로 부추기는 데서 오는 숨 가쁨,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경제적 자원의 배분논리와 연동돼 있는 사회적 인정체제가 비민주적으로 구축돼 있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 만드는 분위기일 수도 있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이 이 모든 주장을 수용하고 처방을 하겠다는 것은 아닐지라도 민생, 복지, 내외적인 위협으로부터의 안전판 마련 등 부분적으로 개선을 약속하는 것이리라.
불안시대 극복을 위한 지도력
오늘의 젊은 세대는 1970, 80년대의 사회비판 세력과는 다르다. 우리 사회의 가치 기준에 저항하며 비판하고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모색하기보다 열심히 스펙을 쌓고 현재세계의 가치를 충실히 따라 하고자 노력하는 세대다. 칙칙하고 무거운 가치보다 가벼운 즐김을 더욱 추구한다. 어찌 보면 착하고 낙천적이며 쾌활한 세대지만 불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불안을 느끼지 않으려고 사소한 즐거움에 탐닉하며 고민을 받아쳐 버린다. 젊은 세대에게 잔뜩 가르쳐 놓고 막상 그것을 실현할 수 없도록 사방을 막아놓은 현 시스템(좌우를 막론하고)의 책임자들은 진정 책임을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국내 시스템이든, 국제적인 신자유주의 체제이든 간에 말이다.
불안의 시대를 절망으로 이끌지, 새로운 빛으로 인도할지는 새로운 지도자들 몫이다. 경제적 민주주의, 사회 통합, 복지국가 건설이 불안을 딛고 일어서게 할 빛이 될까. 문제는 누가 국민의 열정적인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 낼 가치를 제시하느냐다. 에릭슨은 외적인 예측성(엄마는 나갔지만 늘 돌아온다)과 내적 확실성(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이 확립됐을 때 아이는 비로소 불안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성취가 가능하다고 했다. 새 지도자는 무슨 대단한 가치 제시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예측 가능성과 확실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mjinpar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