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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송미령]딸들아, 어서 시집 좀 가거라

입력 | 2012-08-25 03:00:00


송미령 도예가

공부하다 서른이 넘어버린 큰딸 정수리에 흰머리가 솟아나와 있다. 엄마더러 뽑아 달란다. “아니 시집도 안 갔는데 벌써 흰머리가 나면 어쩐단 말이냐?” 구시렁거리며 뽑아주는 어미의 속이 편치 않다.

‘시집 못 간 제 심정은 더 답답하겠지’ 하는 마음에 되도록 결혼 독촉을 안 하려고 애쓴다. 그러다가도 “올해 안으로 하든지 아니면 독립이라도 하라”며 한순간에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노처녀의 시계는 빨리 돌아간다. 몹시 무더웠던 올여름, “그래도 난 여름이 낫다. 찬바람 불면 곧 겨울 오고 그럼 또 한 살 더 먹지 않니?”라고 가슴 후비는 말도 딸에게 했다. 저도 초조하겠지만 나이 찬 딸이 둘이나 되는 엄마인 나는 두 배로 속이 탄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만 간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잘못한 것은 없는지 찬찬히 반성도 해 본다. 딸들을 통해서 대리만족하려고 계속 공부하라고 부추긴 것은 아닌지, 일찍 결혼해서 손해 봤다고 애들 앞에서 너무 툴툴댄 건 아닌지, “싸게 놀지 말라”며 은근히 딸들의 콧대를 높여 놓은 건 아닌지. 아니면 내 인간관계가 좁아서 제대로 된 중매 자리를 마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히려 나보다 더 느긋한 딸이 날 위로한다.

“걱정 마. 언젠간 시집가겠지. 일단 공부 끝내고, 취직하고, 결혼할게.”

“그래. 어서 결혼해서 손주 좀 보게 해줘라. 자손이 계속 이어져야 내 나이 먹는 걸 위로 받는 거다. 내가 늙는 만큼 누군가는 자라나야 서럽지 않지.”

나이 먹는 딸들 바라보며 노심초사


딸들을 잘 가르쳐 놓으면 서로 데려가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둘 다 나이가 꽉 차 버렸다. 애들이 철이 없었을 때는 가슴에 ‘찡하게’ 오는 사람을 못 만나서라고 하더니 이제는 무난한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단다.

딸들이 아직 공부 중이고, 고학력에 나이가 있다 보니 신랑감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풍조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배워도 안 되고 나이가 더 많아도 안 된다. 그러면서 직장은 남자보다 좋아야 한단다. 또래의 평범한 청년들은 이미 임자가 있거나, 직장이 없거나 아니면 나이 많은 총각들도 어린 신붓감을 구한다고 하니 이럴 때는 딸 가진 쪽이 억울하다.

내 친구의 딸이 아이를 둘 낳고 이혼을 했다. 엄청난 상처를 받은 내 친구는 “여자는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약자가 되니까 혼자서 ‘쿨’하게 사는 게 낫다, 시집보내려 애쓰지 말라”고 내게 말한다. 나는 “갔다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아예 안 가는 것보다는 낫다. 아이들이라도 있는 것이 든든하지 않으냐”고 말한다.

내가 남편을 선택했던 기준은 퍽 단순했다.

남편과 처음 데이트하던 날 한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가족을 지키려고 졸지에 악당과 싸우게 된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나오는 영화였고, 남편은 “남자는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짧은 코멘트를 했다. 나는 그때 이 남자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아끼지 않을 거라는 신뢰감이 생겼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살아오면서 수없이 부부싸움을 했지만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청춘들이 만나서 결혼하는 데 뭐 그리 따지는 게 많은지.

내가 젊었을 땐 남의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것도 겁내지 않았는데 요새는 다 갖추고 나서 결혼하려니 엄두가 안 나는 거다.

가진 것 없는 흥부에게 오직 낙이란 아내와 아이들뿐이었으리라. 부부가 사이좋게 아이 기르며 사는 게 행복의 기본이고, 거기다 돈 있고 출세하면 더 좋은 것인데 요즈음은 우선 순서가 많이 바뀌었다.

나도 직업군인과 결혼하여 아이들 어릴 때 참 힘들었다. 셀 수 없이 이삿짐을 싸고 풀고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공무에 매인 남편에게 육아를 도와달라는 등의 사치스러운 부탁은 할 수도 없었다. 아이를 업고 시장 보러 멀리까지 다니곤 했다.

가난해도 열심히 저축하며 살았던 힘은 내 가족에게 몰두하며 희망을 키워간 데에 있었다. 돌아보면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냈는지. 나이 들고 보니 세상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인물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힘든 세월을 같이 이겨낸 동지로 대접받고 있다.

소박한 삶의 기쁨 어서 누렸으면


난 내 딸들도 내가 느껴온 소박한 삶의 기쁨을 어서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건전한 남자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아이들 기르면서 눈물로 밤을 새워 보기도 하고, 겸손하게 기도하며 살기를 바란다.

나도 TV 시리즈나 높은 이혼율을 보면 딸들에게 대충 만나서 후다닥 시집가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다려야 하는지. 아직은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마치 거래를 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 하지만 딸이 취직을 하고 나서도 짝을 못 찾는다면 고려해 볼 생각이다.

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소원은 남북통일도 아니고 자식들의 결혼이다.

송미령 도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