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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입력 | 2012-08-25 03:00:00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사람과 어울린 혹등고래를 찍은 장남원 씨의 ‘고래’. 롯데갤러리 제공

제주 앞 바다에서 길이 5m가량 되는 고래상어 두 마리가 지난달 어부들의 그물에 잡혔다. 이들에게 ‘해랑’ ‘파랑’ 이름을 붙여주고 서귀포시의 한 수족관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으나 해랑은 먹이를 먹지 않아 폐사한다. 동물단체들은 좁은 수족관에 갇힌 스트레스를 폐사의 원인으로 지목했고 결국 수족관 측은 남은 한 마리를 이달 안에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파랑이가 곧 귀향한다는 기사를 읽으며 고래상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니 상어의 으스스한 이미지와 달리 이들은 고래처럼 몸집은 육중해도 성격은 순하다. 작은 물고기와 플랑크톤을 주식으로 삼는 멸종위기종으로 무게 20t, 최대 18m까지 자라는 지구상 가장 큰 물고기다.

덩치로 보면 바다에는 고래상어보다 더 큰 혹등고래가 산다. 고래는 사람과 같은 포유동물이다. 그래서일까, 크고 신비로운 고래에게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을 본다. 지금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수중사진작가 장남원 씨의 ‘고래, 움직이는 섬’전은 몸무게가 30∼40t 나가는 혹등고래 코앞으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호흡을 돕기 위해 새끼를 등에 업은 엄마 고래의 따사로운 모성이, 악수하듯 지느러미를 뻗어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순간이 포착돼 있다. 5년 동안 남태평양을 누벼온 작가는 공기통 없이 깊이 10m 바다에 1분씩 잠수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대한 고래를 한 앵글에 담아냈다. 그는 말한다. “혹등고래는 호기심 많고 착하다. 서로 익숙해지면 집채만 한 덩치로 사람의 동작을 따라하는 등 친밀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고래를 향한 시인들의 관심도 사진가 못지않다. 고래와 바다가 한 몸이라 말하는 안도현 시인의 작품을 비롯해 고래를 호명하는 시가 많다. ‘커다란 예쁜 고래 한 마리가/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최승자 ‘고래꿈’)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푸른 바다가 아니지’(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불쑥, 바다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면/당신의 전생(前生)은 분명 고래다.’(정일근 ‘나의 고래를 위하여’)

기약도 없는 고래를 기다리는 시인처럼, 산다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다. 계절은 단 한 번도 ‘주자 교체’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없다. 폭염이 지나길 기다리느라 지치긴 했어도 마침내 반환점을 돌아 도착한 8월의 마지막 토요일. 여름 끝자락, 갑갑한 일상을 탈출해 깊고 푸른 바다를 파랑이랑 자유롭게 유영하는 나의 모습을 꿈꿔본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