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는 1919년 UPI통신사의 서울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운동을 뉴스로 타전해 세계에 알렸다. 그는 이 일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지금의 독립공원)에 갇혔고 1942년 추방될 때까지 딜쿠샤에 살았다. 이곳은 양기탁과 베델이 함께 발행한 대한매일신보의 사옥으로도 추정돼 서울시가 몇 년 전부터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건물 맞은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조선군 총사령관) 권율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42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 그래서 이곳 지명이 행촌동이다. 역사가들은 은행나무 근처를 권율의 집터로 보고 있다.
▷딜쿠샤는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2006년 방한하면서 실체가 정확히 확인됐다. 그는 아버지가 찍은 서울 사진 17점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명예시민증도 받았는데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의 옛 사진도 아버지 작품이다. 딜쿠샤는 퇴락했지만 아름답고 기품 있으며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종로구 관계자는 “올해 4월 딜쿠샤의 소유주인 한국자산관리공사로부터 문화재등록 동의까지 받았지만 수십 년 동안 이곳을 무단 점거해 살고 있는 저소득층 10여 호의 이주 대책이 없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