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자극에 노출된 일반 사람의 뇌(왼쪽)와 흉악범죄자의 뇌(오른쪽)를 양전자단층촬영(PET)한 결과 전두엽 부분(뇌의 앞부분·사진 위쪽)의 활성화 정도가 큰 차이를 보였다. 흥분조절과 행동억제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손상될 경우 죄책감이나 동정심이 결여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에이드리언 레인 교수 연구 논문에서 발췌
최근 성폭행 살인과 흉기난동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 범죄들을 사회구조적인 문제 탓으로 돌리는 분석이 만연하고 있다. 이런 분석의 밑바탕에는 흉악범 역시 비뚤어진 사회가 빚은 산물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뇌과학자들과 범죄학자들 사이에서는 흉악범죄를 사회구조의 탓으로만 돌리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죄자의 ‘생체적 특성’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뇌에 대한 분석이 활발해지면서 흉악범의 뇌가 일반인과 다른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옴에 따라 ‘뇌 과학’을 범죄 분석과 재범 방지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회가 범죄를 만들었다”며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만 돌리려는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2010년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김길태는 항소심에 앞서 세 차례 정신감정을 받았다. 1차와 3차에서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 외에는 정신질환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2차 감정에서는 ‘측두엽 뇌전증(간질)’ 진단을 받았다. 측두엽 뇌전증은 잠시 동안 기억을 잃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증상이다. 이 증상이 범죄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뇌 과학이 국내에서도 조명 받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1990년부터 이미 이 분야를 집중 연구해 ‘전두엽이 손상되면 충동조절과 행동억제 기능에 영향을 줘 죄책감과 동정심이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국가들도 초기엔 범죄자 생체 연구에 소극적이었다. 우생학이 19세기∼20세기 초 인종주의와 홀로코스트의 이론적 근거로 사용된 전례가 있는 터라 자칫 이 같은 연구가 특정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또 사회구조의 책임을 강조하는 진보적 학풍의 영향으로 범죄의 원인을 범죄자 개인에게서 찾기보다는 범죄자도 사회구조의 희생자로 간주하는 관점이 오랫동안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의료와 과학 기술의 발달로 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범인의 생체적 특성에서 범행 원인을 찾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1994년 이탈리아 테라초 지방에서 여성 5명을 성폭행한 뒤 무참히 살해한 범인의 뇌를 2005년 연구한 결과 전두엽 손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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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합적 범죄 원인 규명에 도움
전문가들은 뇌 과학을 활용하면 20일 경기 의정부시 지하철역이나 2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서 일어난 흉기난동 사건처럼 사회생활에서 생긴 갈등이 ‘묻지마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에 대한 이해와 대응책 마련도 한층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히 ‘불우한 환경 탓에 홀로 고립된 채 사회 불만을 키워왔다’는 분석에 그치지 않고 ‘외톨이 생활→외출 자제→빛 노출 및 운동 부족으로 뇌 분비 물질인 세로토닌 부족→범죄 억제력 상실’ 등 범죄 구조를 좀 더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기 사회적 환경이 뇌 발달에 어떤 영향을 줘 범죄로 이어졌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처방도 다양해진다. 사회적 환경 개선과 더불어 약물치료 및 운동을 통한 재활 프로그램 활용 등도 이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전두엽 분비 물질을 정상 수치로 돌리는 약물을 개발해 치료에 활용하거나 뇌 분비 물질 수치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운동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한다.
문제는 성범죄자 가운데 상당수가 가정불화나 부모의 방치로 인지적인 뇌가 자라지 못한 데 있다. 사회화 과정이 미흡해 뇌 발달이 방치된 것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뇌 과학을 둘 다 활용할 때 범죄자 분석에 더욱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관련 논문도 찾기 어려운 데다 이를 형사정책과 연계해 활용하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다. 서유헌 한국뇌연구원 원장은 “외국에서는 범죄자의 뇌 연구 결과가 판결에서 증거자료로 쓰이기도 하고, 치료에 이용되기도 한다”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라도 관련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