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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영순]‘가시 없는 장미’를 개발하기까지

입력 | 2012-08-29 03:00:00


이영순 경기도농업기술원 원예육종팀장

장미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꽃이다. 그만큼 신품종에 대한 요구도 높다.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우리는 2001년 7월 장미가 품종보호 대상작물로 지정됨으로써 외국 품종에 많은 로열티를 내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1990년 초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에서 장미 육종을 시작했고, 현재 장미연구사업단을 구성해 장미 품종을 육성, 보급하고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도 1997년부터 36개 품종을 개발했다. 새 품종이 나오는 데는 최소 5∼7년이 걸린다. 유전자 수집, 교배, 특성 검정, 품평회, 농가 실증, 시장성 검증 등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만들고자 하는 특성을 가진 장미의 유전자를 수집하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내외 꽃시장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한다. 향기가 강하다든지, 꽃 색깔이 특이하다든지, 가시가 없다든지, 꽃 수명이 오래간다든지 등 기존 품종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을 가진 귀한 장미 유전자를 수집해 교배한다.

교배는 섬세한 작업이다. 4∼6월 오전에 장미꽃 암술머리에 다른 꽃의 꽃가루를 묻혀 씨앗을 만들고, 인위적으로 유전자 교환이나 변이를 유도해 새로운 꽃을 탄생시킨다. 장미의 경우 평균 결실률은 60% 정도고 발아율도 40% 내외다. 그만큼 새로운 종자를 얻는 데 많은 노력이 든다.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는 매년 8000개의 꽃에 인공수정을 시켜 5만 입(粒·종자를 세는 단위)의 종자를 얻는다. 꽃이 크고 모양이 아름답고, 꽃수명이 오래가고, 줄기 길이가 길고, 수확량이 많고, 병충해에 강한 우수한 계통을 선발해 3∼5년 동안 키운다.

최종 선발을 할 때는 농가와 종묘업체, 유통 상인, 해외 바이어 등 각 분야 장미 전문가들이 모여 엄선을 해서 2, 3개 품종을 개발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1ha(약 3000평)의 온실에서 이뤄진다. 장미 한 품종에는 온실 안에서 묵묵히 수고해 준 많은 손길들의 땀과 정성이 숨어 있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농가에서는 이 때문에 늘 두꺼운 가죽장갑을 끼고 작업한다. 장미 가시는 꽃잎과 잎에 상처를 입혀 품질을 손상시킨다. 그래서 개발하기 시작한 게 바로 ‘가시 없는 장미’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2010년 육성한 가시 없는 장미 ‘필립’은 2006년 줄기에 가시가 적은 ‘GR99-21-90’ 계통을 모본(母本·씨앗을 맺는 엄마나무)으로 하고 파스텔 분홍색 ‘미라바이’ 품종을 부본(父本·꽃가루를 제공하는 아빠나무)으로 개발이 시작됐다.

인공수정으로 생긴 씨앗을 파종해 2007년에 실생(實生·씨앗에서 싹이 난 후 자라서 된 어린 나무)을 길러 꽃 빛깔과 형태가 우수한 53계통을 예비 선발했다. 이어 2010년까지 특성 검정과 품평회를 거쳐 ‘GR06-13-50’ 계통을 최종 선발해 ‘필립(Feel Lip)’ 이라는 품종 이름을 붙여주었다.

‘필립’은 지난해 본격적으로 경기 고양 파주, 경남 김해, 전북 전주 등 전국으로 보급돼 생산되고 있다. 특히 고양의 변유섭 농가와 김해 조용준 농가의 ‘필립’은 꽃 가격(‘필립’ 장미 10송이에 6000원, 일반 장미 5000원)도 높아 소득이 올랐다고 한다. 지난해부터는 해외에 ‘딥퍼플’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데 에콰도르, 콜롬비아, 케냐 등 9개국 32개 농장에서 로열티를 받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국제화훼무역박람회(IFTF)에서 딥퍼플 등 우리 장미 다섯 품종이 세계 유명 장미들과 나란히 전시된 모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앞으로도 매력적인 장미 육성을 위한 연구자들의 땀과 열정은 계속될 것이다. 농가, 상인, 소비자 모두 ‘장미’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영순 경기도농업기술원 원예육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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