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 못딴것보다 날 못이긴게 아쉬워”
여자탁구 국가대표로 10년을 뛴 김경아는 2012 런던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 폼을 벗는다. 그는 “런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쉬웠지만 탁구인생 27년 을 후회 없이 뛰었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이를 갖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 결혼(2007년 6월)한 지 5년째. 그래도 참아야 했다. 올림픽 메달이 필요했다. 나를 대신할 후배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라켓을 들어야만 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자로 남길 바랐다.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런던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4위. 메달도 박수도 없었다. 억울했다. 남편을 홀로 남겨둔 채 태릉선수촌에서 살다시피 했던 나날들. 이대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다는 게 속상했다. 지난 4년간 흘렸던 땀과 눈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경기가 끝난 뒤 무대 뒤편으로 걸어 나오며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취재진이 나를 향해 “고생했다”고 위로했다. 가슴이 울컥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후배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했다. 나의 마지막 올림픽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여자 탁구의 ‘맏언니’ 김경아(35)는 런던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 3, 4위전에서 싱가포르에 0-3으로 진 뒤 서럽게 울었다. 경기 직후 불 꺼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현정화 총감독도 끝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평소 냉정하기로 소문난 그의 눈물은 의외였다. 현 감독은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몇 번이나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걸 다독이며 여기까지 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경아가 눈물을 흘리니 나도 가슴 아팠다.”
현 감독과 김경아는 이날 술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웠다. 스승은 마지막까지 대표팀을 이끌어준 노장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현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어학연수를 떠나며 김경아에게 “이제는 세 식구로 놀러오라”고 했다. 남편 그리고 2세와 함께 오라는 얘기였다.
김경아는 “메달을 못 딴 것보다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초 국제탁구연맹(ITTF) 오픈 대회에서 3차례나 우승했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금메달도 노려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공을 노려보는 눈매가 매섭다. 김경아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탁구의 ‘맏언니’답게 최선을 다했지만 단식 8강, 단체전 4위에 머문 뒤 눈물을 흘렸다. 동아일보DB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김경아는 대표팀 유니폼을 벗은 대신 지도자로 나서기로 했다. 소속팀인 대한항공 코치를 맡는 것이다. 그는 “아이를 가지면 선수생활은 자연히 못한다. 나와 같은 스타일인 수비 전형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경아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취미로 탁구를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27년간 탁구만 생각하며 살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직후 도쿄 오픈에서 우승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단식 동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런던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을 뿐이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