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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조두순’ 고종석 사건 충격]“애들은 잘 있죠” 범행 직전 PC방서 아이엄마에게 물어봐

입력 | 2012-09-01 03:00:00

나주서 잠자던 7세 여아 납치 성폭행… 인면수심 범행 과정
평소 피해자 가족 식당서 밥먹고 집에도 놀러가
납치후 큰 길 피해 어두운 골목거쳐 강 둔치로




8월 29일 오후 9시경 전남 나주시내 한 가정집.

고종석은 서울에서 내려온 친동생(20), 작은아버지와 함께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회포를 푼다며 소주 5병을 사왔다. 전남 순천시 장천동 한 모텔에 월세방을 얻어 살고 있던 고종석은 나주의 작은아버지 집에 이틀 전에 놀러온 상태였다. 이전에도 고종석은 나주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며 자주 작은아버지 집에 들렀다. 술자리는 2시간 반 정도 이어졌다.

오후 11시 25분경, 고종석은 “동생과 한잔 더 마시겠다”며 집을 나와 1시간 반 정도 술을 마셨다. 2차 술자리가 끝난 뒤 동생이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작은아버지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단골 PC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0일 오전 1시 10분경 그는 이곳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A 양(7)의 어머니(37)를 만났다. 그녀는 ‘오디션’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고종석은 그녀에게 “매형(A 양의 아버지)은 잘 살고 계시죠. 술 한잔 해야 하는데”라며 반갑게 말했다. 또 “애들(A 양을 비롯한 4남매)도 잘 있죠”라고 물었다. 고종석은 A 양의 집에 서너 차례 놀러간 적이 있었다. 간혹 A 양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식당에서 끼니도 해결했다.

고종석은 ‘서든어택’이라는 PC게임을 10여 분간 하려 했으나 접속이 잘 되지 않자 30일 오전 1시 반경 PC방을 나왔다. 그는 PC방에서 100m 정도 떨어진 A 양 집으로 가 기웃거렸다. A 양의 어머니가 PC방에 있어 범행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출입문을 연 뒤 거실에서 자고 있던 A 양을 이불로 싸들고 빠져나왔다.

고종석은 이불로 싼 A 양을 들고 어두운 골목길과 계단을 거쳐 영산강 둔치로 갔다. A 양 집은 왕복 6차로 도로 옆이어서 범행 장소인 영산대교 밑으로 가기 위해서는 왕복 6차로 도로의 횡단보도를 2번 건너야 한다. 그는 주민이나 차량 운전자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이 도로를 건너지 않고 뒷골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영산대교 밑에서 A 양을 성폭행한 뒤 그대로 버려두고 달아났다. 범행 장소는 A 양 집에서 직선거리로 130m가량 떨어진 곳이다. 고종석은 오전 2시 반경 A 양의 집에서 50여 m 떨어진 슈퍼마켓에서 현금 23만 원, 담배 7만 원어치를 훔친 뒤 범행 장소에서 4km 정도 떨어진 나주 시내 한 찜질방에 숨었다.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30일 오전 2시 반경 귀가한 A 양 어머니는 A 양이 없는 것을 알았지만 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자는 줄 알았다. 오전 7시 반에 딸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A 양 어머니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끔찍했던 범죄의 현장 8월 30일 전남 나주시에서 피의자 고종석이 초등학생 A 양을 성폭행한 뒤 버리고 달아난 영산대교 다리 밑. 알몸으 이곳에서 빠져나온 A 양은 100m 떨어진 영산강 둔치 옆 인도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성폭행을 당한 A 양은 영산대교 밑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한참을 쓰러져 있었다. 정신이 든 A 양은 직장이 파열되는 등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이불을 꼭 안은 채 알몸으로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한걸음에 달려갔을 거리지만 영산강 둑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m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이 A 양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해가 중천에 뜬 오후 1시경. 소녀는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불과 함께 온몸이 젖어 있었다. 태풍까지 불어 공포, 추위, 고통이 더한 속에서 A 양은 그렇게 긴 새벽과 오전 한나절을 아무도 없이 홀로 보내야 했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고종석은 30일 하루 종일 찜질방에서 머물며 상황을 예의 주시했다. 경찰에 발견된 A 양은 “범인이 자신을 삼촌이라 했다. 어두운 색의 옷을 입었다. 머리가 짧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범인이 20, 30대인 것으로 보고 수사망을 좁혀갔다. 나주경찰서 강력2팀 최선주 경사(48)는 범행 현장 주변 동네 사정에 밝은 한 남성에게 어두운 색 옷을 잘 입고 스포츠형 머리를 한 젊은 남성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 남성은 “PC방에서 자주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한 뒤 고종석의 이름을 포스트잇에 적어 건넸다. 이 남성으로부터 고종석이 즐겨 찾는 순천의 PC방을 알아낸 경찰은 이곳에 5명을 잠복시켰다. 고종석은 태풍 볼라벤이 북상하기 전이어서 일감이 없자 순천의 여관에서 방을 빼 소지품을 PC방에 맡기고 나주로 왔다.

고종석은 31일 오전 10시경 나주를 떠나 광주를 거쳐 순천의 단골 PC방으로 갔다. 그는 앉자마자 ‘나주 성폭행범’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가 31일 오후 1시 25분경 경찰에 5분여 만에 붙잡혔다. 고종석은 검거되는 순간 범행을 시인했다.

나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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