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작가 판카즈 미시라의 ‘제국의 폐허로부터’
이 논쟁의 주인공인 미시라가 최근 영국 등에서 출간한 ‘제국의 폐허로부터’(사진)가 4일 미국에서 출간된다. 이 책은 20세기 중반까지 서구 열강이 아시아에 세력을 넓혀갈 때 새로운 아시아를 만들기 위해 각국에서 활동해 온 사상가들의 궤적을 따랐다.
이 책에 소개된 첫 번째 인물은 아프가니스탄 카불 출생으로 ‘진정한 이슬람정신’의 복귀만이 서방의 침략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창한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1838∼1897)다. 그는 이슬람의 몰락을 퇴폐로 규정하고, 이성과 과학기술의 존중과 헌법 제정을 통한 의회제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슬람 국가의 폭군정치를 비난했는가 하면 여성 교육을 주장한 거의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또 서구의 식민주의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이슬람권이 단합해야 한다는 범이슬람주의를 제창했다. 저자는 그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동안 빛을 보지 못했지만 후세에 이슬람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 밖에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인도 문학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베트남 공산혁명을 이끈 호찌민 등도 눈에 띈다. 1919년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평화회의에서 당시 우드로 윌슨 미 대통령의 눈에 띄기 위해 서양식 양복을 입기도 했던 호찌민의 일화는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는 이 회의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멈출 것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니얼 퍼거슨처럼 이 책 또한 한쪽에서만 역사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며 별점 2개(5개 만점)를 주었다. 하지만 미국 출간을 앞두고 이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만큼 2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서구의 번영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조바심의 반영으로 보인다. 한국 근대 사상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