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반짝 더위에 대해서는 유럽에서도 ‘노부인의 여름(old wives' summer)’ ‘물총새의 날’ ‘성(聖) 마틴의 여름’ ‘성 루크의 여름’이라는 식으로 다양하게 불렀다. 중부 유럽에서 쓴다는 말인 노부인의 여름은 늦더위를 가리키는 우리 표현 ‘노염(老炎)’과 작명 센스가 닮았다. 점잖게 번역하느라 노부인이지, ‘늙은 마누라들의 여름’이라고 옮기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노부인의 여름에 대해서는 9월 말을 가리키는 것이니 11월 초에 나타나는 ‘인디언 서머’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국에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이유로 노부인의 여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력 당국이다. 한여름에는 전력 수요가 높지만 그에 대비해 발전소도 최대한 가동하고 기업에 미리 절전 경영도 당부한다. 절전 캠페인도 비교적 호응이 좋다. 반면 가을에는 발전소들이 점검에 들어가고, 시민은 ‘가을에 무슨 전기 걱정’이라고 여긴다. 이때 갑작스러운 더위가 찾아오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어 어’ 하는 사이에 전력난이 일어난다. 지난해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진 날도 9월 15일이었다.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