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악범죄 잇단 충격… ‘집행없는 사형선고’ 논란 재점화
그는 법정에서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대학생 커플은 파도가 요동쳐 물에 빠졌는데 구하지 못한 것뿐이고 20대 여성 2명에 대해선 가슴을 만지려 실랑이를 벌이다 함께 바다에 빠졌다가 혼자만 살아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피해자의 시신은 피부가 군데군데 까졌고 시커먼 타박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배 위로 기어오르려다 오종근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생긴 흔적이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2심 도중 사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요구했다.
○ 1인당 평균 3.5명의 목숨 빼앗아
오종근처럼 사형수가 사형제 위헌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1953년 사형이 형법에 명시된 이후 네 차례 있었다. 그들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는 헌법 제10조를 근거로 살인범의 생명도 소중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사형 집행이 억울하게 숨진 원혼을 위로하고 유족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방편이라고 여긴다. 경기 수원시에서 오원춘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20대 여성의 남동생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난도질하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살인마에게 왜 인간 대우를 해야 하느냐”며 “수십 년이 지나도 사회로 못 내보낼 위험인물이라면 사형을 통해 사회와 영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경남 통영에서 김점덕에게 납치 살해된 아름 양(10)의 아버지도 “그 어린 것의 억울함을 달래주려면 아빠인 내가 복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면 국가가 대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집행도 안 되는 사형 선고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헌법은 특정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피고인 등 당사자가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거나 헌법소원을 낼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살인과 특수강간으로 사형이 확정된 정모 씨는 1995년 “사형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해 폐지해야 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7 대 2로 ‘합헌’ 결정했다. 오종근이 제기한 위헌심판도 1년 5개월에 걸친 심리 끝에 합헌으로 결론 났다. 이때는 5 대 4로 재판관의 판단이 팽팽했다. ‘합헌’ 재판관 5명 중 2명이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 변화를 반영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 사형수 대부분 범행 시인
현재 복역 중인 사형수 60명 대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법정에서 “더이상 재판도 필요 없고 살고 싶지 않으니 빨리 사형을 시켜달라”고 주장한 경우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 대표적 ‘사법살인’ 사례로 거론되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처럼 잘못된 재판에 의해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사형수는 형이 확정됐지만 집행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결수’ 신분으로 구치소 독거실에서 홀로 생활한다. 구치소 밖으로 나올 희망이 없는 데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기분이 틀어질 때는 다른 재소자나 교도관에게 돌발 행동을 하며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구치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다만 법무부가 2008년 관련법을 개정해 미결수인 사형수를 기결수에 준해 처우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사형수의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서울구치소에 수십 명이 몰려 있던 이들을 대전 대구 부산 광주구치소로 분산 수감했고 희망자는 노역장에서 일도 할 수 있게 됐다. 2010년 3월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은 청송교도소(현재의 경북북부교도소)에 사형 집행 시설을 설치하고 사형수 상당수를 이곳에 격리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이 계획은 추진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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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