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일 양평고 특수교사
난 알비니즘(Albinism)이 있다. 일명 ‘백색증’.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등 내 전신은 온통 하얗고 이 때문에 남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외모로 4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알비니즘은 현대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희귀 유전성 질환이다. 피부는 자외선에 매우 약하며 시각장애(저시력)를 동반하는 특징이 있다.
1970년대 초반 나는 “양키 새끼를 낳았다”는 아버지의 원망 섞인 얘기를 들으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이 질환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햇볕에 선탠을 시켜 주면 까맣게 될 거예요”라는 말도 안 되는 주변의 권유를 실천하다 3도 화상을 입어 매우 큰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유난히 덥게 느껴지는 올여름, 남들 다 하는 물놀이도 내게는 도전이며,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음껏 공을 차는 것조차 내게는 꿈이자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의 벽이다. 또한 나의 저시력은 시각장애인들의 염원인 운전도 불가능하게 했다. 난 어디를 가든 지하철, 버스,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대중교통을 사랑하는(?) 국민이 되었다.
대학 진로를 고민하거나 직업을 갖는 데도 사회의 높은 벽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을 받았다. 눈이 나쁘니 의학이나 생명공학, 디자인을 전공하는 게 불가능했고, 경찰이나 소방관이 되려 하여도 이 또한 이 사회가 만든 신체검사라는 기준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사회에서 만든 벽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내 장애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20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이 문제를 깨닫게 되고 인정하면서 나와는 단절됐다고 느꼈던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나와 같은 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어 내가 겪었던 아픔, 시행착오 등을 내 후배 장애 학생들은 덜 겪도록 해 주고 싶었다.
대학에서 중등특수교육을 전공한 나는 2001년 경기도에 임용되어 올해 12년차의 선생님이 되었다. 교원자격증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오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만들어져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1분이 멀다 하고 “선생님” 하며 나를 부르는 나의 학생들,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툼과 사고와 결석 등으로 나를 긴장시키는 녀석들. 그렇지만 난 이 녀석들 덕분에 행복하고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시간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좋았음을 느낄 수 있다. 비록 장애는 있지만 내 소중한 학생들도 학교에서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길을 나도 함께 웃으며 걷고 싶다.
이동일 양평고 특수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