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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안철수의 정치 머신은?

입력 | 2012-09-06 03:00:00


송평인 논설위원

정치에는 머신이 필요하다. 정치에 웬 머신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영미권 정치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란 책에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우리가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조직에 해당하는 말이 머신이다.

결국 민주당과의 단일화로 가나

안철수는 베버식으로 말하자면 카리스마적 지도자 유형이다. 대중의 강력한 추종을 받는 지도자는 대개 카리스마적 지도자다. 박근혜도 이런 지도자 유형에 속한다. 신의 은총이란 뜻의 카리스마는 대체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추종을 얻는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된다. 안철수는 홀연히 혜성처럼 떠올랐다. 청춘콘서트나 무릎팍도사만으로 그가 부상한 이유를 다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민주당이 겪는 곤경은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어느 후보도 박근혜나 안철수에 필적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데서 비롯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혼자 정치를 할 수는 없다. 그의 뜻을 실현시킬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런 조직은 통상 정당을 의미한다. 그러나 안철수가 정당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머신이라는 말이 여기서는 더 적합한 것 같다.

안철수는 아직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그의 출마에 우호적인 쪽으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 경선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당 안팎의 야권에서는 안철수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언론도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출마 이후의 상황으로 점차 관심을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에 대한 우려는 정치경험이 전무하다는 데 있다. 본인은 나쁜 경험은 없을수록 좋다는 쪽이니까 이런 우려는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그도 대선이 10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머신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다. 그저 한번 나와보는 대선이 아니라 당선을 목표로 나오는 대선이라면 출마 선언은 그 머신에 대한 구상이 확실히 서고 난 다음이어야 할 것이다.

머신이란 말은 수공업적 명사(名士) 정당 체계로부터 기계공업적 대중 정당 체계로 넘어가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지금 안철수는 장인이 도제 몇 명 데리고 일하듯이 ‘원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출마를 선언하면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줄을 서겠지만 공장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머신을 조직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가 4·11총선 전 신당 창당을 구상했다가 접었을 때 이런 생각은 포기한 것 같다.

그로서는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는 책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자신과 민주당의 정책유사성이 90% 이상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가 지금까지도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민주당의 머신을 이용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주당에서 결정된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의미한다. 단일화의 방식만이 향후의 정치적 동력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감한 인물이라야 운명을 잡는다

대선은 인물 이전에 판을 봐야 한다. 인물을 볼 때는 최선의 인물만 찾게 되지만 판을 볼 때는 최선과 차선의 인물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가령 박근혜가 최선이라고 보는 사람은 박근혜가 패했을 때 문재인이 차선일지 안철수가 차선일지도 봐야 한다. 친노세력에 끌려다니는 문재인보다는 안철수가 유연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안정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의 신은 여신이다. 만약 당신이 그 여자를 손아귀에 넣고자 한다면 그녀를 과감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을 잡으려면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야 한다는 뜻에서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 안철수도 이제 신중하기보다 과감해져야 할 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