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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장환수의 數포츠]내 식구 타이틀 챙기기… 야구감독 ‘4金의 비법’

입력 | 2012-09-08 03:00:00


1984년 프로야구 타율과 출루율 1위를 두고 경쟁한 세 선수(왼쪽부터 장효조, 홍문종, 이만수)의 희비는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엇갈렸다. 만약 세 선수가 정상적으로 타격 대결을 벌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동아일보DB

‘내 손 안의 PC’라는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서 다시 야구게임에 심취하게 됐다. 그래픽이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화려하다. 선수의 실명과 사진이 나오고 실제 성적과 컨디션을 체크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국내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두 게임을 번갈아 한다. 휴일과 휴가 기간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더니 어느새 플레이 타임이 두 게임 모두 열흘을 훌쩍 넘겼다. 중학생 아들은 축구게임, 중년의 아빠는 야구게임에 빠져 있으니 여성 가족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각설하고 게임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 하나. 시즌 중 영입한 타자가 5할대 타율을 기록했는데 규정타석에 불과 몇 타석이 부족해 타격왕이 되지 못했다. 이 경우 실제 리그에선 어떻게 될까. 1996년 샌디에이고의 토니 그윈은 0.353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지만 규정타석에 5타석이 모자랐다. 잦은 부상 때문이었다. 규정타석 1위는 콜로라도의 엘리스 벅스로 0.344였다. 사상 초유의 일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절묘한 해답을 내놨다. 그윈이 5타석 모두 범타로 물러난다 해도 타율은 0.349이니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해 타이틀을 준 것이다. 내셔널리그 역대 타이인 여덟 번이나 타격왕에 올랐고 1994년부터 97년까지 4연패에 성공한 그윈의 일곱 번째 타격 타이틀이었다.

▶규정타석은 타율, 출루율, 장타력 등 누계가 아닌 비율을 따지는 부문에서 경기 수에 3.1을 곱한 만큼 타석에 서야 순위를 인정해주는 규칙이다. 아무래도 타석이 적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평균자책과 승률 등은 규정이닝(경기 수×1)을 채워야 한다. 하지만 투수는 타자와 달리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타이틀 홀더가 될 수 없다. 타자는 타석당

1타수 무안타면 되지만 투수는 이닝당 무한대의 실점이 가능하다. 승률에는 규정승수도 있다. 1985년 OB 윤석환은 시즌 막판 4-0으로 앞선 경기에 3회부터 등판해 6과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5승째(1패)를 올려 삼성 김시진(25승 5패)과 함께 공동 승률왕에 올랐다. 당시 OB 감독은 김성근이었다. 이듬해 승률 순위는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 가운데 뽑기로 규정이 바뀌었다.

▶결국 타이틀 조작은 이런 기록상의 허점을 파고드는 데서 출발한다. 비율을 따지는 분야에서는 선수가 규정타석이나 이닝을 채운 뒤 시즌 막판 몇 경기에 빠진다. 경쟁 선수와 맞대결에선 기록행진을 방해한다. 많이 할수록 좋은 누계 분야에선 상대팀과의 담합마저 이뤄진다. 다승의 경우 선발투수의 승리 요건이 악용된다. 선발투수는 5이닝 이상을 던져야 하니 크게 리드한 경기에서 다른 투수가 5회 이전에 등판해 손쉽게 승리를 가져간다. 그동안 국내에서 있었던 타이틀 조작은 대부분 이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다.

▶1984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타율 홈런 타점)을 차지한 삼성 이만수는 두 경기를 남겨두고 타율 0.340으로 롯데 홍문종(0.339)의 거센 추격을 받았다. 하필 남은 경기는 두 팀 간 맞대결. 삼성은 이만수를 벤치에 앉혀두고 홍문종을 9타석 연속 고의볼넷으로 걸렀다. 세계 야구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여기까지는 웬만한 야구팬이면 다 아는 사실. 그런데 문제는 출루율이었다. 아직 타석이 남은 홍문종의 출루율이 0.420으로 치솟자 이만수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던 장효조(0.424)가 위협을 받게 됐다. 이에 삼성 김영덕 감독은 롯데 강병철 감독을 찾아갔고 홍문종 역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야 했다. 요즘 같았으면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이라며 한바탕 난리가 날 일이었다.

▶초창기 재일교포 선수들은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팀은 달라도 뭉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해 삼미 장명부는 자신이 등판한 두 경기에서 홍문종에게 5개의 도루를 내줬다. 그러자 장명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료 포수 김진우는 며칠 후 해태와의

2연전에서 김일권에게 7개의 도루를 헌납한다. 결국 삼성이 롯데에 그랬던 것처럼 막판 OB와의 2연전에서 져주기 경기를 했던 해태의 김일권이 그 보상으로 6개의 도루를 쓸어 담으며 도루왕 3연패에 성공한다. 당시 해태 감독은 김응룡이었다.

▶도전과 응전이 있고 배신도 난무한다. 1989년 태평양 김성근 감독은 박정현의 신인왕 등극을 위해 9월 30일 해태에 9-1로 크게 앞선

5회 2사 후 선발 최창호를 내리고 박정현을 기용했다. 박정현은 7안타 4실점으로 난타 당했지만 19승째를 올렸다. 이틀 후 김응룡 감독은 OB와의 경기에서 3회에 3점을 뽑자 신동수를 빼고 선동열을 마운드에 올려 21승째를 만들어줬다. 1992년에는 세 경기를 남겨두고 빙그레 송진우와 해태 이강철이 18승으로 동률이었다. 마침 양 팀은 맞대결이 남은 상황. 두 감독은 최종전에 두 투수를 선발 맞대결시키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경기에서 빙그레가 5회까지 6-0으로 앞서자 김영덕 감독은 한희민을 내리고 송진우를 올렸다. 세계 최초인 송진우의 다승, 구원왕 석권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동료 선수들이 밀어주는 경우도 있다. 1989년 10월 3일 해태 김성한은 78타점, 빙그레 유승안은 75타점이었다. 유승안은 자신의 타점 쌓기에 도움을 주는 후배에게 보상하겠다고 공언한다. 이튿날 연속경기 1차전에서 유승안은 3타점을 올리며 김성한과 동률이 된다. 이어 2차전 4회

1사 1, 3루에서 송일섭이 안타를 쳤지만 3루 주자 황대연이 홈에 들어오지 않아 만루가 된다. 여기서 유승안은 싹쓸이 2루타를 쳐 3타점을 추가한다. 결국 유승안은 85타점으로 김성한(84타점)을 제치고 타점왕에 올랐다. 당시 해태에서도 김성한을 위해 야수의 악송구가 외야까지 갔는데도 2루 주자가 3루에서 멈춘 일이 있었다.

▶이후 잦아들던 타이틀 만들어주기는 2000년 현대 박종호(0.340)가 두산 김동주(0.339), SK 브리또(0.338)를 따돌리기 위해 막판 네 경기나 빠지면서 다시 불거졌다. 그해 현대는 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이 공동 다승왕(18승)에 올랐다. 김재박 감독의 절묘한 안배 덕분이었다. 김 감독은 LG 시절인 2009년에는 박용택의 타격왕을 위해 롯데 홍성흔에게 4연속 볼넷을 던지도록 해 또 도마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언급된 네 감독은 공통점이 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다 김 감독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