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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하태원]정치인의 연설능력

입력 | 2012-09-08 03:00:00


1960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대통령 후보의 연설 능력이 선거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민주당의 존 F 케네디가 행정 경험이 풍부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을 꺾은 원동력은 “이 시대는 창의력과 혁신, 상상력, 결단을 요구한다”고 역설한 웅변의 힘이었다.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던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사는 가장 유명한 연설 중 하나다. 미국 선거 사상 처음 도입된 TV토론 역시 젊고 잘생긴 케네디에게 축복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라디오 연설만을 들은 사람은 케네디보다 닉슨의 연설과 토론에 더 공감했다는 점이다. 이미지를 뺐다면 닉슨 연설이 더 논리적이었고 콘텐츠도 풍부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정당의 전당대회가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다이내믹하고 할리우드 영화보다 흥미진진한 것은 최고 수준의 연사들이 보여주는 언어의 성찬(盛饌) 때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중연설의 최고봉이다.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것처럼 허스키한 목소리가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청중의 감성을 자극한다. 재치 넘치는 유머, 청중과 호흡하는 임기응변도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5일 민주당 전당대회의 클린턴 연설은 1992년 자신의 대선후보 수락연설과 더불어 생애 최고의 스피치가 됐다. 4년 전 전당대회 당시에도 버락 오바마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연설을 했지만 부인 힐러리 클린턴 패배의 앙금 탓에 혼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예정된 30분을 넘겨 48분 동안 신명나게 이어진 올해 연설에서는 오바마의 재선을 바라는 충심이 느껴져 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대에 오른 오바마에게 올린 90도 각도의 인사는 겉치레의 쇼맨십이 아닌 존경의 몸짓으로 보였다.

▷우리 정치인들의 연설에서 감동을 느낀 적이 언제였을까 하는 물음을 던져봤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의 최고 덕목으로 다소곳한 이미지가 꼽히는 우리 정치풍토에서 건강한 팔뚝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남편의 지지를 호소하는 미셸 오바마가 탄생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모바일투표 조작 논란, 유력 대선후보 불출마 종용 파문으로 어수선한 우리 대선 판에 명연설을 통해 세련된 정치담론의 장을 복원해 보라고 주문하는 일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하태원 논설위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