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패션의 ‘큰손’들… 이거다 싶으면 지갑 활짝 연다
“아빠 됐지만 멋은 포기 못해” 회사원 임원만 씨(34)가 컬러풀한 보타이 신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그는 “아빠가 된 뒤에도 패션은 포기하지 않았다”며 “주변에도 외모에 관심이 많은 X대디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X대디’들이 대학에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는 해외 패션 브랜드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이기도 하다. 경제적 풍요 속에 신(新)문화와 접하면서 소비 유전자를 갖게 된 X세대는 아빠가 된 뒤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소비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 문화 수혜자에서 흥행 큰손으로
‘X대디’는 최근 대중문화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흥행 큰손’으로 꼽힌다. 올해 성공한 한국영화 중에는 30, 40대 남성을 겨냥한 작품이 많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 개론’ ‘도둑들’ 등이 대표적이다. ‘건축학 개론’과 ‘범죄와의 전쟁’은 1980, 90년대를 배경으로 했고 ‘도둑들’은 홍콩 누아르에 열광했던 30, 40대 남성을 자극했다.
공연업계도 X대디를 겨냥해 1980,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록그룹들을 잇달아 초청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아이언 메이든’ ‘슬래시’ ‘미스터빅’ ‘드림시어터’의 공연 관객은 X대디가 절반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이 공연들을 주관한 액세스 ENT의 문소현 팀장은 “아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는 아빠 팬들이 요즘 공연의 새로운 트렌드”라고 귀띔했다.
○ 1990년대부터 꽃 핀 패션 경쟁
임원만 씨(34)는 평소 보타이에 컬러풀한 양말을 즐긴다. 이름 모를 디자이너가 만든 길거리 패션 아이템도 거리낌 없이 산다. 특히 시계는 개성이 뚜렷한 유명 브랜드 제품을 즐겨 찬다. 임 씨는 “아이 둘이 태어나면서 패션에 쓰는 예산이 싱글 때보다는 줄었지만 내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고 할인상품 등 대체재를 찾는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김인철 씨(35)는 직장에서 ‘패셔니스타’로 꼽힌다. 지금도 외국 패션잡지를 구독하는 그는 대학 시절엔 헐렁한 면바지에 폴로 티셔츠, ‘닥터 마틴’ 워커 차림을 고수했다. 이런 힙합 패션이 1990년대 ‘강남 스타일’이었다. 김 씨는 “X세대는 학력고사에서 수학능력시험으로, 삐삐에서 휴대전화로,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며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패션 경쟁도 새롭게 적응해야 할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 소비에 죄책감 없는 세대
X대디의 소비 성향은 수치로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광고대행사 이노션 월드와이드가 전국 남성 5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적으로 무리가 있더라도 명품 브랜드는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0대가 37.2%로 가장 많았다.
트렌드컨설팅업체 PFIN이 3월 서울에 사는 남성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내 외모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 신경을 쓰는 편이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30대가 67%로 가장 높았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이 연령대별 남성 고객 매출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도 30대가 34%로 40대(27%), 20대(9%)를 크게 앞섰다. 명품시계와 패션잡화, 구두 등 개성을 뚜렷이 드러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은 격차가 더 컸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