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글로벌 북 카페]中 커리어우먼 소재의 두 책

입력 | 2012-09-08 03:00:00

‘미지의 자기를 만나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당신이 편안하면 그게 바로 화창한 날입니다’ 격동기 헤쳐나간 한 여성의 삶




소설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겨울 밤, 산 중턱에 멈춰 선 렉서스 승용차에서 시작된다. 핸들을 잡고 있던 리뤄링(李若菱)은 좋은 직장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남편을 둔 세련된 여성이다. 기름이 떨어졌는데 이날따라 휴대전화마저 챙겨 오지 않았다. 당황한 그가 발견한 건 멀리 인가에서 나오는 불빛. “전화 한 통화만 쓰게 해주세요”라며 문을 두드린 리뤄링을 맞이한 사람은 뜻밖에도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었다.

여기까지는 상황 설정이 그럴싸한 납량소설 분위기다. 하지만 리뤄링과 노인이 주고받는 대화는 이 책 ‘미지의 자기를 만나다(遇見未知的自己)’의 서문에 나온 것처럼 심리치료서임을 말해준다. 노인은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다. 리뤄링이 이름을 말하자 “그건 네 이름일 뿐”이라며 자기가 누구인지를 자문하는 철학의 영역으로 그를 밀어 넣는다.

저자 장더펀(張德芬)은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대만 여성. 그도 한때는 아나운서로 리뤄링처럼 잘나가는 직장인이었지만 2002년 사표를 낸 뒤 철학과 심리학에 빠져들었다. 그 결과물이 2007년 출간한 이 책이다.

‘미지의…’는 ‘내 운명을 주관하는 인생 모델’ ‘의식과 잠재의식의 역할’ 등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심리학 혹은 철학서라기보다는 지인의 배신, 남편의 외도 등 현대 도시 여성들이 일상에서 부닥칠 수 있는 개별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도 소개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결혼 실패자’로 규정하며 자학하는 리뤄링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가 느끼는 고통의 상당 부분은 남들이 현재의 자기를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결혼 또한 나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다. 내면의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는 산중 노인의 가르침을 다시 끄집어낸다. 외부의 사물은 자신의 마음이 투사된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 한 권의 책이 있다. ‘당신이 편안하면 그게 바로 화창한 날입니다(니若安好便是晴天)’는 20세기 초 중국의 여류 건축가이자 작가인 린후이인(林徽因·1904∼1955)의 생애를 다룬 전기다. 린후이인은 푸젠(福建) 성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예일대에서 수학했다. 중국 국가 휘장(徽章)과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제작에 참여한 그는 영국 런던에서 유학할 때 저명한 시인 쉬즈모(徐志摩)와 불같은 연애를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작가 바이뤄메이(白落梅)는 린후이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기보다는 그가 남긴 시를 소개하며 사고의 흐름을 좇아가는 형식을 택했다. 격동기 중국을 살아간 한 여성이 느꼈던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그가 남긴 문학작품과 버무려 풀어낸 것이다.

이 두 책은 중국 내 판매부수 1, 2위를 다투고 있다. 둘 다 성공한 여성을 소재로 했지만 ‘커리어우먼 자기 개발서’라기보다는 깊은 사색의 결과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장르가 다름에도 느낌이 닮아 있다. 현대 중국은 여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속은 ‘정글 자본주의’와 다름없다. 이 책들은 심해지는 경쟁 속에서 성공 지상주의로 내몰리는 중국인들, 그중에서도 약자인 여성들을 위로하고 있다. 또 ‘성장’만 추구하며 30여 년을 달려온 중국이 이젠 뒤를 돌아봐야 할 때임을 말해준다.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