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실장
정준길의 오발탄은 안철수라는 모범생을 벗기는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안철수가 대통령을 꿈꾼다면 국민의 알권리나 언론의 알릴 권리를 피해 갈 수 없다. 최근의 검증은 통념(通念)처럼 안철수가 과연 세상을 착하게만 산 모범생이냐는 데 집중돼 있다. 안철수에겐 모범생 이미지와 함께 부잣집 엄친아 출신 특별계급 이미지가 겹쳐진다. 컴퓨터 백신을 공짜로 나눠 주고 대학생들을 위로하는 청춘콘서트를 다니는 것은 모범생의 이미지다. 그러나 병원장집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아파트 딱지를 증여받아 내 집을 마련하거나 미국 유학 중에 포스코 사외이사를 하며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포스코 돈으로 비즈니스클래스 타고 십여 차례 한국을 오간 것은 은수저 물고 태어난 특별계급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自己愛의 미화가 부른 거짓 논쟁
안철수는 2009년 MBC의 ‘무릎팍 도사’에서 “입대일 아침까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허겁지겁 부대로 달려갔다.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온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 김미경 씨는 2011년 8월 인터뷰에서 “남편을 기차에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섭섭했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그 정도로 백신 개발에 몰입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지만 아내가 남편의 입대일을 몰랐다면 상식에 배치된다. 자기애(自己愛)가 강한 모범생이 성공담을 말하다 보면 극화(劇化) 또는 미화(美化)하기 쉽다. 이것이 지나치면 자신의 기억까지도 왜곡하는 게 인간의 심리구조다.
안철수가 월간지 ‘신동아’ 보도 후 룸살롱에 간 것을 인정하면서 “최근의 일부 보도와 주장은 아무 근거도 없이 거짓을 만들어 내고 사실을 왜곡하는 낡은 방식”이라고 발끈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단란한 게 뭐죠”라고 동문서답하지 말고 처음부터 “술을 못 하지만 사업상 교제를 하느라 여종업원이 있는 집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다”고 말했더라면 불필요한 논란을 확산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모범생의 착한 모습만 보여 주려다 말이 꼬이니 엉뚱한 데 화살을 쏘는 것 아닌가.
유민영 대변인은 안철수의 어머니가 사 준 사당동 재개발 딱지의 증여세를 냈는지에 대해 “부모님이 연세가 있기 때문에 잘 기억을 못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것은 부모가 아니라 수증자(受贈者)인 안철수가 기억을 해 대답했어야 할 대목이다. 증여세를 부모가 대신 내주면 그만큼 증여세를 또 내야 한다. “부모님이 집 장만하라고 재개발지역 딱지를 사 주었지만 증여세는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왜 솔직히 말을 못 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외국 근무할 때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마사지를 받으려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자신을 선택해 준 게 고마워 성심성의껏 서비스를 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실용주의자다운 발상이다.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안원구 씨는 여러 인터뷰에서 포스코 세무조사 때 150억 원대의 도곡동 땅 관련 서류에 적힌 ‘실소유주 이명박’이라는 연필 글씨를 봤다고 말했다. 투자자문회사 BBK는 도곡동 땅을 포스코에 매각한 자금으로 설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마사지를 즐기고 타인 명의로 땅을 은닉한 의혹도 있지만 국민은 그가 경제를 살려 줄 것으로 믿고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안겨 줬다. 후보 시절부터 성추문에 시달린 미국의 빌 클린턴이 성인(聖人)이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안철수가 남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면 모르되 스스로 대통령을 하고 싶다면 모범생티를 벗어던져야 한다. 사람들은 혼탁한 세상에서 귀티 나는 모범생을 좋아하지만 위선자는 싫어한다. 모범생 신드롬이 지나치다 보면 복잡한 정치의 장에서 현실 부적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선(善)하지 않은 국내외의 정치적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대통령이 착하기만 해서는 국가를 보위하고 민생을 보살피기 어렵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