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걸스’ ‘오케이뱅’ ‘캔디마피아’.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아이돌 그룹을 벤치마킹한 다른 나라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아이돌걸스는 ‘소녀시대’와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여성 9명으로 이뤄진 중국의 걸그룹이다. 오케이뱅은 이름부터 ‘빅뱅’을 어설프게 흉내 낸 티를 내는 중국의 보이그룹이다. 캔디마피아는 태국의 걸그룹으로, ‘2NE1’의 헤어스타일과 의상 그대로 무대에 선다. 아시아 각국에서 최근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을 본뜬 ‘짝퉁 아이돌’이 등장해 한류에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한다.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가 아이돌걸스나 오케이뱅의 처지였다. 주로 일본 것을 모방했다. 1987년 데뷔한 남성 3인조 댄스그룹 소방차는 역시 남성 3명으로 구성된 일본 댄스그룹 ‘쇼넨타이(少年隊)’를 따라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 록그룹 ‘X-저팬’의 노래를 우리 가수나 그룹 서너 명(팀)이 동시에 베껴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일본 그룹 ‘튜브’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걸 알게 된 배우 김민종이 가수생활 중단을 선언한 게 불과 16년 전이다.
▷1980년대 중반 현대자동차 엑셀이 미국에서 잘 팔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 미국 CNN의 뉴스 앵커는 ‘Hyundai’를 ‘현다이’라고 발음했다. ‘현대’보다는 ‘혼다’에 가깝게 들렸다. 일본차의 아류 정도로 인식됐다.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인 워크맨과 삼성전자가 만든 마이마이를 비교하면서 ‘어휴, 언제 워크맨 같은 걸 우리가 만드나’ 하고 한숨지었던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물론 이제 미국인들은 현대를 ‘현대’라고 발음하고 삼성전자는 애플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다.
▷지금이야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과거에는 미래에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발생할 확률이 아주 낮기 때문에 벌어지고 나면 엄청난 놀라움과 파급효과를 불러오는 사건을 ‘X-이벤트’라고 한다. 9·11테러나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이 대표적인 예지만 우리 가요를 전 세계인이 부르고,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서며 현대자동차가 혼다를 제친 일은 우리에게 X-이벤트다.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인 피치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일본보다 높게 매긴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X-이벤트가 한국 정치에서도 벌어진다면 나쁘지 않겠다.
민동용 주말섹션 O₂팀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