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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다함께/2부] 벨기에-네덜란드의 이민자 정책

입력 | 2012-09-10 03:00:00

“인종-장애 차별 없애자” 독립기관 세워 해결
■ 벨기에 인권보호 대책




《 ‘모로코 출신들은 정비공으로 채용하지 않는다. 우리 고객은 모로코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와서 일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만드는 벨기에의 A회사는 2005년 이 같은 채용방침을 내세웠다가 소송을 당했다. 특정 국가 출신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행위는 차별이라고 ‘기회균등과 반인종주의 센터(CEOOR)’가 지적했지만 이에 따르지 않아서다. 유럽 사법재판소가 인종 차별이라고 2008년에 판결하자 이 회사는 문제가 된 방침을 철회됐다. 》

‘기회균등과 반인종주의 센터’ 직원들이 벨기에 브뤼셀 센트럴역에서 장애인 차별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센터의 직원(왼쪽)이 행인에게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기회균등과 반인종주의 센터 페이스북

벨기에의 한 식당도 비슷한 일로 곤욕을 치렀다. 다른 손님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다며 2009년 입구에 ‘머리 보호기구(헤드기어)를 쓴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는 안내문을 써 붙여 놓은 뒤였다.

어느 날 여성이 식당에 들어오다가 안내문을 봤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머리에 보조기구를 쓴 여성이었다. 그는 CEOOR에 불만을 제기했다. 즉시 제거하라는 요구에 식당은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법정에 섰다. 지난해 벨기에의 법원은 “건강 상태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안내문은 제거됐다.

CEOOR는 출신 나이 종교 장애 경제력 건강 이념을 이유로 내세우는 모든 분야의 차별을 없애는 데 주력하는 기관이다. 이민자의 권리보호가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요제프 더 비터 센터 이사장은 “차별을 당했다는 민원이 매일 평균 10건 이상이다. 지난해에만 5185건이 접수됐다”고 말했다.

그는 센터를 자세히 소개하기 전에 포스터를 가리켰다. 하나는 남자가, 다른 하나는 여자가 흰색 천으로 눈을 가린 모습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는 메시지다.

CEOOR는 1993년 법에 따라 생겼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기관이다. 예산은 정부가 대지만 운영시스템에 공무원들이 관여할 수 없다. 직원들은 “정부기관과 비정부기구(NGO)의 중간 위치에 있는 특별한 기관”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곳에는 법이나 인권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진 직원이 100여 명 근무한다. 민원을 검토하고 직접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특정 기관이 차별을 한다는 내용이 접수되면 공문을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문제가 있다면 시정 또는 개선을 요구한다.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대화로 해결되지 않거나 상해, 살인 같은 극단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만 법적 소송을 벌인다. 지난해 접수된 민원 5185건 가운데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는 16건에 그쳤다. 대부분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됐다는 얘기다.

센터는 공공장소에 나가 차별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또 시민단체나 학교를 찾아다니며 교육도 한다. 잉그리트 아엔덴봄 법률고문은 “사회 전반에 차별에 대한 감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 이민자 지원은 투자” 한인학교 보조금 삭감 철회 ▼

■ 네덜란드 로테르담市

로테르담 한인학교에서 진행된 연례행사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이들은 마땅한 건물이 없어 토요일마다 미국인학교 건물을 빌려 쓰고 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로테르담 한인학교 제공

유럽 각국이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차별을 막고, 이들을 적극 돕는 이유는 보편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소수자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통합,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투자로 여길 정도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한인학교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학교는 한인 교민들이 1996년 만들었다. 처음에는 미국인학교 건물을 주말에 빌려서 운영했다. 교육 목표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자’. 매주 토요일이면 100여 명이 모여 한글, 한국 문화와 역사, 영어, 네덜란드어를 배웠다.

미국인학교에 지급하는 임차료는 연 4만 유로 정도. 개교 때부터 로테르담 시가 이를 전액 지원했다. 소수민족을 보호하고, 이들의 모국 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자는 취지에서였다.

2010년 말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시정부는 지원비를 절반(연간 2만 유로)으로 줄였다. 한인학교는 임차료를 내기 어렵게 됐다. 교민사회와 대사관, 한국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기철 주네덜란드 대사가 로테르담 투자청과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그는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으로 많은 한국 기업이 유럽에 진출할 텐데 로테르담에 제대로 운영되는 한인학교가 없다면 다른 도시를 선택할지 모른다고 설명하기로 했다.

대사관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자료를 요청했다. 교육 문제로 로테르담 시를 떠나거나 투자를 기피하는 한국 기업이 전체의 20%라고 가정했을 때 시의 주민소득이 연간 1680만 유로가 줄어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난해 11월 이 대사는 자료를 들고 로테르담 투자청장을 만났다. 임차료 2만 유로를 아끼려다 1680만 유로를 손해 보겠냐고 물었다. 한인학교에 대한 보조금 삭감은 소탐대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완고했던 투자청장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협상은 6개월간 계속됐다. 그사이 이 대사는 미국인학교를 설득해 임차료를 연 2만9000유로로 낮췄다. 로테르담 투자청에 대해서는 “한인학교 임차료를 전액 지원해 달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투자청이 올 4월 공문을 보냈다. 한인학교 임차료를 전액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교민들은 “이미 결정된 계획을 바꾼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라며 환호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난 김준영 씨는 로테르담 한인학교장으로 재임하던 2년 전을 회상하며 “예산삭감 계획을 처음 들었을 때는 막막했다. 하지만 한인학교에 대한 지원이 소중한 투자라는 사실을 로테르담 시가 알았기에 다시 도움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브뤼셀·헤이그=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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