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축제 백일장 가슴에 쌓인 만학의 사연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백일장에서 또박또박 글을 쓰고 있다. 9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해오름 백일장’의 모습.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아이들이 어릴 적에 내게 숙제를 물어봐도 멍하니 있었다. 열심히 글을 배워 손자 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원부용·64)
서울 평생학습축제가 열린 9일 서울 여의도공원. 할머니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가며 글을 써내려갔다. 평균 연령 70세. ‘해오름 백일장’에 참가한 늦깎이 학생들. 행사를 주최한 서울시교육청은 두 가지 주제를 냈다. ‘배우는 즐거움’과 ‘나는 학생이에요’.
‘큰딸이 책을 갖고 와서 엄마 이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나는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말했다. 얼마 뒤 이번에는 딸아이가 시험을 본다며 문제를 갖고 와서 물었다. 할 수 없이 엄마는 학교를 안 다녀서 글을 모른다고 말해줬다. 그때 딸하고 둘이서 한참이나 울었다.’
‘해오름 백일장’ 참가자인 81세 이현숙 할머니가 쓴 글.
자신은 못 배웠지만 둘은 고등학교, 셋은 대학까지 보냈다. 글을 모른다고 고백하고 붙들고 울었던 큰딸이 이제 마흔여섯 살. 이 딸이 알려줘서 올해부터 한글을 가르쳐주는 문해교실을 다니게 됐다.
고 할머니는 “대회에 나와 보니 나만 못 배운 것이 아니구나 싶어 용기가 난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 과정도 배우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올해 여든한 살인 이현숙 할머니는 ‘어느덧 세월은 흘러 노인이 됐다. 이제라도 공부를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글도 쓰지 못했다. 81세 노인이 아동으로 변해 여덟 살이 된 것 같다’고 썼다. 할머니는 집안이 어려워 공부는 꿈도 못 꾸다가 열네 살 때 광복을 맞았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신이 난다. 할머니는 “편하게 있으면 더 늙을 것 같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아주 즐겁다. 영어는 아직 대문자 소문자 알파벳밖에 못 배웠는데 얼른 속뜻을 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