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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영화기자를 취침상태로 이끈 작품들

입력 | 2012-09-11 03:00:00


민병선 기자

1895년 파리의 한 지하실.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해 낸 활동사진. 이 빛줄기의 마법은 젊은이들에게 ‘마약’이었다. 빛줄기가 그려낸 꿈들은 청춘의 뇌를 조종했고, 나도 자유롭지는 못했다. 중독성 강한, 영화라는 이 연인을 만난 것도 30년.

‘응답하라 1983년.’ ‘ET’가 내 고향 땅,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전봇대 한구석을 차지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극장을 찾은 것도 이때가 처음.

지난 시간 그는 내게 꿈이라는 모르핀이 돼 주었다. 그와의 애증을 담아낼 칼럼을 시작하며 먼저 나의 불경죄부터 털어놓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취침 관람’은 그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이다. 그를 향한 내 뜨거운 구애도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의 ‘희생’과 ‘노스탤지어’를 보다 잠든 건 그래도 괜찮다. 지난해 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영화 기자 초창기 시절 영화다. 하지만 초반 10분간의 롱테이크에 그만 녹다운. 눈을 뜨니 극장엔 불이 들어왔다. 술이 웬수.

‘무단 관람’은 죄질이 더 나쁘다. 내가 극장 화장실 개구멍으로 들어가던 세대는 아니지만 불성실한 검표원은 지금도 있지. ‘등급 외 관람’은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추억. 3cm 이하로 두발을 관리해야 했던 때 강수연이 나온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왜 그리 보고 싶었을까. 담배 물고(어머니 죄송!), 작업복 점퍼 입고…. 모른 척해 준 검표원 누나 감사!

그가 나에게 지은 죄도 있다. ‘무성의 관람’은 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다. 지난해 봤던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가 나온 한국 영화. 화면은 안 보이고 앞자리 여자 분홍색 매니큐어 칠한 손톱만 보였다. 영화를 시간과 바꿔 아깝다고 느끼긴 처음. 중간에 극장을 나온 것도 처음.

어쨌든 30년 넘게 사귀어온 그와 나 사이에서 관계 유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의성실’이겠지. 요즘 볼 게 많아진 한국 영화 참 섹시하더군. 술 먹은 다음 날 눈꺼풀이 밀려 내려와도 당신과의 데이트에 충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