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기자
‘응답하라 1983년.’ ‘ET’가 내 고향 땅,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전봇대 한구석을 차지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극장을 찾은 것도 이때가 처음.
지난 시간 그는 내게 꿈이라는 모르핀이 돼 주었다. 그와의 애증을 담아낼 칼럼을 시작하며 먼저 나의 불경죄부터 털어놓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무단 관람’은 죄질이 더 나쁘다. 내가 극장 화장실 개구멍으로 들어가던 세대는 아니지만 불성실한 검표원은 지금도 있지. ‘등급 외 관람’은 지금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추억. 3cm 이하로 두발을 관리해야 했던 때 강수연이 나온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왜 그리 보고 싶었을까. 담배 물고(어머니 죄송!), 작업복 점퍼 입고…. 모른 척해 준 검표원 누나 감사!
그가 나에게 지은 죄도 있다. ‘무성의 관람’은 그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다. 지난해 봤던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가 나온 한국 영화. 화면은 안 보이고 앞자리 여자 분홍색 매니큐어 칠한 손톱만 보였다. 영화를 시간과 바꿔 아깝다고 느끼긴 처음. 중간에 극장을 나온 것도 처음.
어쨌든 30년 넘게 사귀어온 그와 나 사이에서 관계 유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의성실’이겠지. 요즘 볼 게 많아진 한국 영화 참 섹시하더군. 술 먹은 다음 날 눈꺼풀이 밀려 내려와도 당신과의 데이트에 충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