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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만나는 詩]“멸치도 안먹는 ×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입력 | 2012-09-11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멸치가 달그락거리며 뜀박질을 한다. 반찬통을 넘어 밥알들에 안긴 멸치가 벌건 피를 쏟는다. 희멀게진다. 멸치가 흘린 것은 고추장이 아니다. 피다 고통이다 가슴 쓰린 절규다. 멸치가 아니다. 벽을 향해 쉼 없이 뜀박질하는 것은 바로 나다.

‘이달에 만나는 시’ 9월 추천작으로 진은영 시인(42·사진)의 ‘멸치의 아이러니’를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참여적 시를 써왔던 시인은 2010년 가을께 이 시를 썼다. “대학 때부터 노동운동과 미학적 시 쓰기 사이에서 고민해왔던 것 같아요. 저도 대학원을 가고, 학생운동도 사라졌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회를 보면서 대학 시절 고민이 다시 떠올랐죠.”

밥상머리 앞에서 엄마에게 노동, 실천 등의 단어를 내뱉다가 “멸치도 안 먹는 년이…”라고 타박을 받은 것은 실제 경험이다. 왜 10여 년이 지나 그 멸치볶음이 생각났을까. “사람들은 이제 혁명을 믿지 않아요. 도시락 속 멸치가 도시락을 흔들면 칸을 넘어가는 것처럼, 사회의 완고한 틀이나 경계를 허무는 방법이 이제 일상 속에 있는 미세한 운동이나 리듬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시가 됐어요.”

이원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진은영은 ‘안 들리는 노래’를 깎아서 심장과 발을 가진 ‘시’로 만든다. 그는 깊게 저며 쓰고 그 시를 읽는 우리는 소리 죽여 운다.”

김요일 시인은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같은 진은영의 시편들은 감각적인 사유와 은유를 통해 21세기 한국 시단의 또 다른 페이지를 열어가고 있다”고 추천했다. “진은영의 난해함이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육박해 들어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자기모순의 신랄한 풍자를 사랑으로 잇는 힘에서 나온다. 사시의 저 맑은 눈빛이 한국 시의 칼슘 영양제임을 겨우 안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평이다.

이건청 시인과 장석주 시인은 이병일 시인의 시집 ‘옆구리의 발견’(창비)을 추천했다. “예리한 감각과 돌발적인 상상의 언어들이 교직되면서 불러오는 충격적인 파장을 보여준다.”(이건청) “발견 대상에 대한 예민한 감응력과 상징의 역동성이 돋보이는 시집.”(장석주)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