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태형 리사이틀 ★★★★
피아니스트 김태형은 대담하면서 강렬한 타건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이 같은 변화는 피날레로 연주한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7번에서 정점을 찍었다. 20세기 세계를 주름잡은 모스크바 음악원 피아노 스쿨(학파)의 정수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다이내믹의 요동이다. 1악장에서 연속적으로 모티브가 또 다른 모티브를 낳으며 불안감을 극대화하는 김태형의 솜씨는 놀라웠다. 착 가라앉은 2악장에서는 작곡가가 살았던 소비에트 시절로 회귀해 비참한 삶의 조각을 담담하게 노래하면서 애가(哀歌)로 바뀌었다.
후반부, 아스라이 들려오는 러시아 정교회 종소리의 묘사는 러시아에서 살아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김태형만의 특권이다. 70년 전 프로코피예프가 모스크바 음악원 말리홀에서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가 이 곡을 초연할 때 두 번째 줄에서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설령 모른다 해도 말리홀을 제집처럼 매일같이 드나드는 김태형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김태형은 늘 착했다. 그건 그가 외치는 ‘진실’과 일맥상통했다. 피아니스트 랑랑의 트레이드마크인 ‘오버액션’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얼핏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김태형은 재미를 배워왔다. 투리나의 춤곡을 연주할 때 함께 율동하고,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에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감으로 객석을 초토화했다. 또한 바흐의 ‘카프리치오’를 필두로 들려준 세 곡의 앙코르는 이제 ‘연주자’에서 ‘예술가’로 한 단계 격상한 김태형의 따뜻한 인간미를 확인하게 한 본보기였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