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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

입력 | 2012-09-12 03:00:00

桃: 복숭아 도 李: 오얏 리 不: 아니 불 言: 말씀 언
下: 아래 하 自: 스스로 자 成: 이룰 성 蹊: 지름길 혜




덕이 있는 사람은 잠자코 있어도 그 덕을 사모하여 사람들이 따른다는 뜻이다. 사마천이 이광(李廣)을 평하면서 한 말이다. 시골사람처럼 투박하고 말도 잘하지 못했던 이광의 충실한 마음씨는 사대부의 신뢰를 얻었다. 사마천은 그를 복숭아와 오얏에 비유했다. 꽃이 곱고 열매 맛이 좋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무 밑에 길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흉노에게 전설적인 존재였던 이광은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였고, 성품은 청렴했다. 그는 상을 받으면 부하들에게 나눠줬다. 군사를 인솔할 때는 식량과 물이 부족한 곳에서 물을 보아도 병졸들이 물을 다 마시기 전에는 물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활을 쏠 때 희한한 습관이 있었다. 적이 습격해 와도 거리가 수십 보 안에 들어오지 않거나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쏘지 않았다. 대신 쏘기만 하면 활시위 소리가 나자마자 상대를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싸움 자체를 즐겼다. 이 때문에 그는 싸움터에서 자주 적에게 포위되거나 곤욕을 당했다. 거기장군(車騎將軍) 위청(衛靑)이 흉노를 공격해 농성((농,롱)城)에서 무찔렀을 때도 이광은 흉노의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왔다. 맹수의 공격을 받아 다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물론 사마천도 기록했듯이 이광은 전한(前漢) 시대 흉노와의 70여 차례의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비장군(飛將軍)으로까지 불렸다. 그러나 그는 제후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했고, 위청에게 문책당한 뒤 분을 이기지 못해 자결했다.

이광은 정치에 밝지 못했고, 어리석고 순진해서 조정의 분위기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가 절하된 그의 면모를 이 여덟 글자로 정리할 수는 없다. 이광이 제후에 오르지 못한 이유로는 장군과 장군이 아닌 자에게 요구되는 역할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 가장 컸기에 말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