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나이로 90세… 뿌리 쇠약해 회생여부 불투명
지난달 28일 태풍 볼라벤의 강한 바람에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진 충북 괴산 삼송마을의 왕소나무. 전문가들이 뿌리에 무리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나무를 눕힌 채로 회생시키기로 결정해 왕소나무가 당당히 일어선 모습(아래 사진)은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괴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문화재청 제공
▶본보 2012년 8월 31일자 A16면
“태풍때 지키지 못해 죄송… 꼭 일어나세요”
왕소나무의 회생 작업은 짧은 시간 내에 치료해야 하는 종합병원의 골든타임을 연상시켰다. 문화재청과 괴산군은 나무가 쓰러진 후 네 시간 만에 뿌리 부위에 흙을 덮은 후 가지를 치며 영양제를 투여하는 등의 응급조치를 취했다. 다행히 다음 날 태풍 덴빈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 뿌리가 마르지 않는 데 도움이 됐다. 문화재청은 다시 전문가 회의를 소집해 나무를 쓰러진 그 상태에서 회생시키기로 결정했다. 무리해서 세울 경우 약 8t이나 되는 나무 무게에 남은 뿌리 부위가 손상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회생에 드는 예산만 1억 원이 책정됐다.
7일 기자가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에는 회생 작업이 한창이었다. 붉은 수피(樹皮)와 두꺼운 밑동, 하늘로 솟구친 구불구불한 줄기, 푸른 솔잎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뿌리가 뽑힌 채 흙바닥에 누웠지만 나무는 여전히 거대했다. 나무를 지탱하는 지주목(支柱木)을 세우고 뿌리 부위에 발근촉진제를 바르고 햇볕을 가리는 차광망 등을 설치했다. 벌레가 달라붙거나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잎 근처 가지만 제외한 채 나무 전체를 상아빛 녹화마대(붕대 역할을 하는 헝겊)로 칭칭 감았고 영양제 주사를 놓았다. 작업자들은 쉼 없이 철제 지지대를 오르내렸다.
○ “내년 봄에야 회생여부 판단”
그런 나무가 쓰러졌으니 사람들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종구 삼송1리 이장은 “아직 명이 붙어있는데 저렇게 천으로 싸매놓으니 마치 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 권순덕 씨도 “부모를 방치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왕소나무가 쓰러진 원인에 대해 “수령이 오래돼 땅속 3∼5m 깊이로 내려간 직근(直根)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뿌리가 쇠약해진 상황에서 태풍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사(枯死)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상길 한강나무병원 원장은 “왕소나무가 사람으로 치면 90세 노인과 다름없는 노거수(老巨樹)인 데다 뿌리가 심하게 손상돼 ‘반짝’ 살아난다 해도 앞으로 오랫동안 생존하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 끝내 ‘세상’을 뜬다면?
현재 괴산군청과 문화재청에는 “왕소나무가 고사한다면 몸통을 사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사목은 일반에 판매되지 않는다.
왕소나무가 고사한다면 먼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다. 1990년 후 태풍과 낙뢰, 생육환경 불량 등의 이유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식물(수령 200년에서 600년 사이의 노거수)은 총 17종에 이른다(표 참조).
왕소나무의 향후 ‘거취’도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는 “최근 방부 및 보존처리 기술이 좋아져 왕소나무가 고사해도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며 “이 나무의 경우 ‘부모목’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주변에 후계목이 형성돼 별도의 후계목을 심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괴산=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