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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주식 외도’하다 살해시도… 40대 외과의사의 몰락

입력 | 2012-09-13 03:00:00


외과의사 A 씨(45)는 11일 오후 9시 40분경 광주 서구 풍암동 한 호프집 앞길에 앉아 슈퍼마켓에서 산 맥주를 마셨다. 3병 가운데 2병째를 마셨다. 취기가 올라온 그의 양손에는 손바닥이 코팅된 목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장갑 끝부분은 청테이프로 동여매져 있었고 옆에는 낫과 망치가 있었다.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이 “왜 낫과 망치를 갖고 있냐”고 묻자 A 씨는 “집에서 쓰려고 샀다”고 했다. 계속 추궁하자 그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떨꿨다.

A 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 씨는 검거되기 1시간 반 전에 호프집 인근 커피숍에서 고교 선배 의사 B 씨를 만났다. B 씨에게 빌린 2억 원을 갚는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B 씨는 돈을 갚지 못하는 A 씨를 5일 사기 혐의로 고소해 놓은 상태였다. A 씨는 “당장 2억 원 전부를 갚아라”라고 하는 B 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A 씨는 주식 투자로 모든 재산을 날린 상태였다.

두 사람은 커피숍을 나왔다. B 씨가 100m 떨어진 호프집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A 씨는 인근 철물점에서 낫과 망치, 장갑을 샀다. 빚을 갚을 자신도 없는 데다 후배를 고소까지 한 선배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범행도구를 들고 호프집에 들어갔지만 멈칫했다. B 씨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B 씨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자신의 초등학생 아들 얼굴이 스쳤다. 결국 그는 범행을 포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호프집을 나섰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12일 A 씨에 대해 살인예비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개인병원을 운영할 정도로 재력이 있었지만 10년 전 시작한 주식 투자로 손실을 보기 시작해 병원 건물과 집까지 날렸다. 2008년경 파산 직전 B 씨가 “잘 투자해 돈을 벌어 달라”고 맡긴 2억 원도 날려버렸다.

A 씨는 파산 이후에도 3년간 원룸에서 혼자 살며 남은 수천만 원으로 주식 투자를 이어갔다. 생활고에 시달리자 두 달 전부터는 월급쟁이 의사 생활을 시작했다. A 씨는 경찰에서 “주식에 빠져 인생이 나락에 떨어졌다”며 “이제라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의사로서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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