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 고정, 격발 가볍게… 표적 중앙이 뚫리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쏴봤지만… 표정은 진지하고 자세도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런던 올림픽 남자 권총 50m 은메달 리스트 최영래(왼쪽)와 본보 이헌재 기자의 사격 솜씨가 그랬다. 12일 충북 진천선수촌 사격장에서 열린 둘의 사격 배틀은 오른손잡이임에도 왼손으로 총을 쏜 최영래의 승리였다. 대한사격연맹 제공
○ 자신감을 회복하다
12일 충북 진천선수촌 사격장.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사상 최고의 성적(금메달 3개, 은메달 2개)을 올린 사격 대표팀의 변경수 총감독이 사격 담당 기자들을 초청했다. 김장미(20·부산시청), 최영래(30·경기도청), 김종현(27·창원시청)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 사격 체험을 시켜준다는 거였다.
“원래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요”라며 최영래가 가르쳐 준 첫 번째 방법은 두 다리를 사대에 기대라는 것이었다. 명백히 반칙 행위지만 안정감을 주기 위해 취한 조치였다. 두 번째 레슨은 총을 쏠 때 손목을 움직이지 말고 가볍게 방아쇠를 당기라는 것이었다.
4.5점, 5.5점, 8.8점…. 불과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을 뿐인데 스코어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9점대를 종종 쐈고 10.3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 무모한 도전
“이제 됐다” 싶었다. 누구랑 붙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스승’ 최영래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기자는 갖가지 반칙 행위를 용인 받았다. 사대에 두 다리를 기댔고, 총도 두 손으로 쐈다. 경기는 10m 공기권총 결선 방식에 따라 10발을 쏘기로 했다. 잘하면 메달리스트에게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말했던가. 사격은 ‘멘털(정신력)’이라고. 기자는 첫 발에 5.2점을 쐈다. 최영래는 왼손으로 9.2점을 기록했다. 순식간이 멘털이 무너졌다. 기자의 두 번째 발 스코어는 1.4점이었다. 최영래는 7.1점.
승부는 여기서 일찌감치 기울었다. 그때 심판 김장미가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기자에겐 보너스로 1발을 더 주겠다는 거였다. 5발째에서 기자와 최영래는 동시에 8.1점을 쐈다. “어디서 많이 본 점수네요.” 최영래가 런던 올림픽 50m 결선 마지막 발에 8.1점을 쏘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친 걸 되살린 기자의 치사한(?) 심리전이었다.
최영래는 74.5점으로 경기를 끝냈다. 10발째까지 기자의 스코어는 66.9점. 마지막 한 발을 남겨두고 7.7점만 쏘면 승리였다. 그때 뒤에서 들려온 “8점 쏘면 이겨요”라는 김장미의 한마디. 이 말에 또다시 멘털이 무너졌다. 마지막 발이 5.2점에 그치며 최종 스코어는 72.1점. 2.4점 차 패배였다. 올림픽 메달은 역시 아무나 따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절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