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3년간 8718명 고졸인력 채용 약속 공수표로
○ 특성화고 채용은 속빈 강정
빛바랜 1년 전 약속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과 5개 금융 관련 협회장이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고졸 인력 채용 활성화를 위한 ‘공생발전 공동 업무협약’ 체결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제공
금융회사들이 ‘고졸 채용’으로 분류해 정부에 보고한 직원 중에는 보험회사 상담직, 카드사 콜센터 직원, 시설관리직, 보험모집 보조업무, 경리직, 운전사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대학 재학 중에 채용돼도,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가 경력 채용된 직원도 학력이 고졸이면 모두 고졸 채용에 포함됐다. 지난해 금융권이 뽑았다고 보고한 고졸 2985명 중 신입사원 730명을 제외한 2255명은 이렇게 집계된 것이다.
특성화고 출신 신입사원이 금융 전문가가 되겠다는 희망도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증권사에 입사한 A 씨(19·여)는 현재 콜센터 상담사로 일한다. A 씨는 “입사할 때는 당연히 지점 창구에서 일할 줄 알았다”며 “고졸 사원은 직무를 아예 정해 놓지 않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콜센터에 배치 받아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 같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금융 관련 협회들은 회원사별 고졸 채용 계획과 실적 자료를 요청받자 ‘회원사별 자료가 언론에 나가면 회사별로 비교될 수 있다’, ‘자료가 없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교과부와 금융위원회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금융위는 “자료를 줄 수 없다”고 했지만 국회의원실에서 자료를 요청하자 마지못해 협회별 실적을 새로 파악해 제출했다.
이번 조사는 다른 연구 결과로도 입증된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특성화고 진로이력 분석연구 2012’에 따르면 서울 75개교 특성화고 중 올해 2월 졸업한 1만8296명 중 6813명이 채용됐고 이 중 금융 및 보험업에 취업한 인원은 428명(6.3%)에 불과했다.
○ 입사해도 유리천장에 좌절
이처럼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해도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금융권에 당당히 입사한 고졸 신입사원들은 “공식적인 차별은 없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상황이 많다”고 말한다.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피땀 흘려 능력을 갖춰도 연봉, 승진 등은 대졸 사원을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고졸 사원도 있다. 금융권 고졸 사원이 대졸 사원 첫 직급인 계장이나 주임이 되려면 평균 8년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증권사 고졸 사원 김모 씨(21·여)는 “같이 일하던 대졸 인턴 2명이 6개월 뒤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나보다 연봉이 기본급만 1000만 원이 많았다”며 “업무는 내가 더 잘 알고 내가 그 사람들 일의 뒤처리까지 다 해주는데 그들보다 연봉이 적으니 억울했다. 그래서 요즘엔 아예 대학에 가서 스펙을 더 쌓아볼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