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동아 에세이/김주영]뒤늦은 사과, 고독사로 떠난 한정태 씨에게

입력 | 2012-09-14 03:00:00


그가 졸지에 숨지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6년 전 일이었다. 나보다는 네 살 손위였지만, 그런대로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은 풍편으로 듣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지방 도시 한적한 교외에 있는 요양원에서 고독사(孤獨死)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자주 찾아가지 못했던 불찰과 회한으로 가슴 아팠던 그날 밤은, 한강변에 혼자 앉아 늦게까지 폭음을 했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이제야 듣게 되다니. 요양소의 차갑고 휑뎅그렁한 방바닥에 헐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을 그의 초췌한 모습을 떠올리며 목구멍에 술을 쏟아붓다시피 했었다.

그날 밤 나는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사이, 그리고 그와 나 사이에는, 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너무나 창피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갖가지 비밀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 비밀들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은 채 당연한 것처럼 그는 나보다 먼저 가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미련하고 미욱했던 나는 비로소 그가 내 젊은 시절의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선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피한 것을 몰랐던 나는 그 시절 그에게 이것저것 간섭하며 위압적인 얼굴로 가르쳤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 이르러 그것은 하찮은 얼간이나 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나는 너무나 많은 나이를 먹어 버린 뒤였다는 회한이 또한 가슴을 저린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시절 그와 동행이었을 때, 언제나 내가 앞장서서 그를 꼬드겼고, 그가 바라볼 대상을 내가 먼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버릇에서 연유한 것 같다. 그는 항상 내 등 뒤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얼간이였고, 내가 가리키는 것만 바라볼 줄 아는 줏대 없는 위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늘 내 등 뒤에 있었던 것은 나의 잦은 돌출행동 때문이었음은 물론이었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나를 감싸주기 위한 것이었고, 내가 가리키는 것만 보았던 것도 나를 달래 주기 위한 배려였다. 장애인 취급을 톡톡히 받고 있던 그가 표독스럽고 영악했던 나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많은 사람이 놀랐을 것이다. 그는 이른바 팔푼이였다.

그런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절름발이에 언어장애까지 있어서 말더듬이였던 까닭이다. 그의 표정은 언제나 희로애락이 스쳐 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얼빠진 상태였다. 나는 그를 만날 때마다 박해에 가까운 욕설과 야비한 경멸과 조소, 그리고 자갈 위를 굴러가는 양은그릇처럼 요란한 우격다짐과 생트집 따위를 묵묵히 참아 주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 어울렸으며 그 역시 나하고만 어울렸다. 그때까지 그는 높은 담장 안에 비밀스럽게 갇혀 있었고 나는 진작부터 울타리도 없는 집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철부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날부터 의기투합하여 단짝이 되었고, 바람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 병신춤을 추기 시작했고, 당신의 발음을 흉내 내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역시 그를 조롱하고 폄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비난한 적이 없다. 과거의 짐에 얽매이어 살지도 않았다.

김주영 소설가

그는 “세상에는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숱하게 있다. 때로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그게 세상”이라는 것을 내게 가르쳤다.

어린 시절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그는 이제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았던 차가운 요양소 방바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물의 표면장력을 이용해서 물 위를 가볍게 건너가는 예수도마뱀처럼 그는 이 세상의 더럽고 야비한 것들에 눈곱만큼도 발목을 빠뜨리지 않고 다음 세상으로 건너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승에 남아 있는 나는 그의 몸에서 설핏 풍기던 그 비린내가 그립다.

한정태 씨는 작가와 고향인 경북 청송 시골 마을에서 같이 살았던 손위 친구였다고 한다. 말더듬이에 절름발이였던 한 씨는 집 안에만 갇혀 살았는데 어린 시절 친구가 없던 작가는 밤마다 몰래 그와 만나서 같이 놀았다. 그러나 함께 물에 들어갔다 온 다음 날 한 씨가 고열에 시달리면서 한 씨의 어머니가 더는 만나지 말라고 당부한 뒤로 멀어졌다. 나중에 작가가 된 김 씨는 한 씨가 요양소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 번 방문했지만 한 씨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주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