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수사 원칙 영향
올해 5월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헤어진 애인을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혔던 40대 남성이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풀려나자마자 옛 애인을 다시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해마다 성범죄를 신고하는 건수는 늘고 있지만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성범죄자 구속률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체 성범죄 중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성범죄자 구속률’은 2003년 37%에서 2011년 14%로 8년 사이 23%포인트 줄었다. 같은 기간 성범죄 접수는 2003년 1만1107건에서 2011년에는 1만9830건으로 78% 늘었다.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수사 원칙’이 강조되면서 영장 기각 비율이 높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법원은 재범 가능성과 도주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선별적으로 발부해 왔다. 성범죄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구속영장을 발부한 비율은 2003년 91.3%에서 지난해에는 79.8% 수준으로 낮아졌다.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내린 결론일 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성범죄의 경우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이 피해자인 만큼 불구속 수사 원칙만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피의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하거나 ‘고소를 취소하라’며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런 추세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직 검사장인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은 13일 법률신문 기고에서 성범죄를 포함한 전체 범죄의 구속률이 지난해 1.67%까지 줄어든 것과 관련해 “살인과 성폭력 등 범죄가 날로 흉포해지는데 구속률이 0%를 향해 가는 현실은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