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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입력 | 2012-09-15 03:00:00

석탑속 어머니-석등속 아들, 가슴 저린 천년의 대화




전남 구례군 화엄사의 거대한 각황전(覺皇殿·국보 제67호)을 지나 동백숲 사이로 잘 닦인 돌계단을 올랐다. 숨이 찰 즈음이 되자 탑이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멋들어진 모습의 소나무와 그 너머 지리산의 넉넉한 품이 언덕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여러 계절, 다양한 시간에 이곳에 와 보았지만 올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최고라며 감동의 기록을 스스로 경신(更新)했다. 발길을 멈춘 곳에 우리나라 석탑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이 있었다.

○ 석탑에 남은 연기 스님의 효심

탑은 본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탑은 형태에 따라서 크게 일반형과 이형(異形) 두 가지로 분류한다. 경주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일반형 석탑이다. 이 양식을 벗어난 탑은 이형석탑이라고 부른다. 석가탑의 옆에 서 있는 다보탑이 대표적이다. 8세기경 만들어진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도 대표적인 이형석탑이다.

사사자삼층석탑은 사찰에서 조금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지금은 소나무에 가려졌지만 예전에는 화엄사 넓은 가람(伽藍·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곳)이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스러운 장소였을 것이다. 이 언덕은 효대(孝臺)라고도 부른다. 효대라는 이름에는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스님의 전설이 담겨 있다.

탑은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는 형태다. 사자들 사이에는 스님 한 분이 합장을 하고 서 있다. 스님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모습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석등이 있다. 석등에는 또 다른 스님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찻잔을 들고 있다. 이는 연기 스님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탑과 석등은 연기 스님이 어머니에게 차 공양을 드리는 모습인 것이다. 탑을 지켜볼수록 오묘한 조화와 모자의 깊은 사연에 빠져들었다.

대한불교진흥원에서 발행한 책 ‘화엄사’에 따르면 연기 스님은 절을 지은 후 어머니를 지리산으로 모셔 왔다. 스님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께 차 공양을 빠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연기 스님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석탑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 태풍 지나간 곳에 남은 고요함

화엄사에서의 하룻밤은 제15호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강타한 직후였다. 각황전의 몇몇 기왓장이 바람에 날아갔고 부러진 소나무 가지도 눈에 띄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늦지 않게 방에 들어와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툇마루에 나가 쭈그려 앉았다. 밤바람이 잔잔하게 풍경(風磬)을 흔들었다. 마음을 두드리는 울림.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한밤의 금당을 향해 걸었다.

작은 불들이 간간이 밝혀져 있었다. 불빛이 비치지 않는 어둠에서는 달빛이 발길을 도왔다. 천왕문에 도착하자 거대한 사천왕이 나를 노려봤다. 눈을 피해 금당 앞마당에 서자 위압적인 모습의 각황전과 대웅전이 보였다. 잠시 겁이 났지만 조용한 분위기에 이내 평온이 찾아왔다. 이따금 가느다란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절의 건물들이 풍경 소리로 대화하는 듯했다. 앞면이 7칸에 이르는 널찍한 보제루(普濟樓)의 쪽마루에 앉아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앉아 있다 일어나 효대로 향했다.

효대 주변은 고요했다. 좀 전까지 불던 바람도, 바람에 흔들리던 풍경 소리도 이곳에는 없었다. 이 고요를 위해 이 탑을 다른 전각들로부터 홀로 떨어뜨려 놓은 건 아닐까. 하얀 돌이 달빛 아래 빛났다. 연기 스님이 이고 있는 석등에 내려앉은 달빛이 유난히 반짝였다.

나는 한밤중 어머니와 아들의 조용한 대화를 지켜보았다. 불교에 귀의한 뒤에도 천 년이 넘게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온 효심. 스님이 손에 든 찻잔에서 흘러 나오는 향기가 고운 달밤을 은은하게 물들이는 것만 같았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