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오션 ‘Pyramids’(2012년) 》
가을비는 보슬보슬 내리는 일이 없다. 그 추적추적 소리는 드럼 하이햇(hihat·페달로 조작하는 두 개가 한 세트인 심벌즈)의 ‘칙칫칫칫’ 소리 같다. 귓전을 단속적으로 두드리다 결국 고막에 스며 고이고 차지게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7월 낸 데뷔 앨범 ‘채널 오렌지’로 평단의 극찬을 받은 미국 리듬앤드블루스(R&B) 싱어송라이터 프랭크 오션의 ‘피라미즈’를 처음 들은 날도 비가 왔다. ‘피라미즈’는 R&B 곡으로서는 희귀한, 9분54초짜리 대작이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전반부의 시작은 이렇다. “치타들을 풀어. 도둑이 도망치고 있어. 그들이 클레오파트라를 데려갔어.”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잃은 남자 주인공. 병사들에게 그녀를 되찾아오라며 필사적으로 명령한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향해 울먹인다. “우린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미래를 향해 달릴 거야, 이 바위투성이 세상에서. … 아프리카의 보석? 지금 소중하지 않은 보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남자의 상실감은 분노로 번진다. “어떻게 내게서 달아날 수 있어?” “머리털 많은 삼손과 함께 누워 있는 걸 봤어, 나의 검은 여왕, 클레오파트라. 악몽이었어.”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그녀를 제거하라”는 최종명령을 내리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방에 독사를 풀어 자살한다.
그러고 타임 슬립(시간여행). 이야기 속 시간과 템포 모두. 4분26초부터 5분22초 사이 약 1분 동안 비트는 진공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를 독일의 노장 전자음악 그룹 ‘탠저린 드림’에게서 훔쳐온 듯 몽롱한 32비트의 신서사이저 멜로디가 메운다. 새 이야기가 시작된다.
5분23초, 시작되는 느린 16비트의 하이햇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반복구. “그녀는 오늘밤 피라미드에서 일해.”
껄렁한 옷차림의 남자 바지에 걸린 금속 체인 장식에는, 빛나는 미래를 상징했던 다이아몬드 대신 싸구려 루비가 박혀 있다. 거리로 나가 이 여자를 다른 녀석에게 팔아야만 남자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남자는 일을 끝내고 돌아온 여자를 씻긴다. 여자가 남자 이름을 부를 때, 남자는 자신이 부유한 남자였으면 하고 상상한다. 여자의 사랑은 남자에게 더이상 공짜가 아니다. 돈으로만 살 수 있을 뿐이다.
오션의 노래가 끝나고 악곡은 마지막을 향한다. 비트가 다시 사라진다. 존 메이어가 연주하는 처연한 기타 소리. 머리가 아파온다. 삼손, 포주, 파라오, 모텔, 클레오파트라와 거리의 여자, 다이아몬드, 루비, 피라미드와 룩소르, 기원전 이집트의 황톳빛과 21세기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 모든 게 머릿속에서 독한 칵테일처럼 섞인다. 그리고… 뜻 모를 눈물이 흐른다.
임오션 음악이 내가 꿈꾸는 바다.
theugly7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