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위원
사람 좋고 인물 좋은 것 말고도 문재인은 전선(戰線)을 치는 데 매서운 실력을 발휘했다. ‘독재자의 딸’ 공격이 인혁당 영정들과 겹치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걸 간파한 것이다. 그는 어제와 그제 서울과 경기 경선에서 연설의 3할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둘러싼 과거사 공격에 썼다.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의 뿌리를 잇는 정치세력이 지금까지도 이 땅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고도 끓어오르지 않으면 야당 지지자라 할 수 없다. “이들이 민주주의 발전,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가로막아 왔다”는 대목에선 ‘주류세력 교체’를 외쳤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누가 박근혜와 싸워 이길 수 있겠나”(손학규) “우리끼리 싸우다 유신공주의 집권이라는 역사의 죄를 지을 수 있다”(김두관)며 가볍게 언급한 주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염병 테러가 민주화운동인가
그가 쓴 ‘운명’에는 자신이 변호한 동의대 사건이 왜 벌어졌는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이 사건을 ‘민주화운동 관련사건’으로 인정한 데 대한 논란도 이명박 정부 들어 커졌다”며 오히려 현 정부 공격에 활용했다.
교묘한 역사왜곡이다. 위원회 결정에 대한 논란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분노한 경찰 유족들은 “걔들이 민주화 인사면 법과 질서유지에 나선 경찰은 역적이냐”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2005년 유족들이 4 대 5로 패했다. 유족은 명예권을 침해당한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법률적 이유에서다.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노 정권에서 앉힌 조대현 이공현 재판관이 위원회 손을 들어준 것이다. 조대현은 대통령 탄핵심판 때 노무현 측 변호인이었고 전효숙 재판관과 함께 대통령의 사시 동기였다.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두 재판관이 퇴임하지 않았다면 동의대 사건의 민주화운동 인정은 3 대 6으로 위헌 결정이 났을 거라는 뒷말이 법조계에서 나왔다.
동의대 사건에 대한 역사인식은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권력에 맞서는 모든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볼 가능성 때문이다. 5·16이나 유신의 과(過)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박근혜를 비판하지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나라에서 군부쿠데타나 유신쿠데타가 또 터질 리 없다. 그러나 극단적 집단이 자기주장만 옳다며 법과 체제를 들이받는 일은 폭발할 수 있다. 집권세력이 “대한민국은 실패한 역사”라며 법과 체제를 뒤엎는다면 더 큰 일이다.
문재인은 2007년 대통령비서실장 송년사에서 “과거사 정리를 통해 역사의 대의를 바로잡아 왔다”고 자부했다. 인혁당 사건 재심에 기여한 ‘인혁당 재건위 조작’ 규정도 노 정권 3년차였던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에서 나왔다. 당시 동아일보 사설은 “이번처럼 명백한 증거에 입각하지 않고…과거사위가 ‘정해진 결론’을 내린다면 언젠가 다시 청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2006년 KAL기 폭파범 ‘김현희 가짜 몰이’도 여기서 했다. 오충일 위원장은 곧 대통합민주신당 대표가 됐고, 지금은 민주당 상임고문이시다. 과거사와 정치의 절묘한 만남이다.
국민 가르기 역사戰이 퇴행이다
문재인이 남의 역사인식은 비난하면서 5년도 안 된 ‘살아있는 과거사’에 착오를 일으키는 것도 불안하다. 민주평화연대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민주정부 10년간 대한민국은 특권 반칙 부패를 청산하며 전진했지만 새누리당 집권 5년간 역사는 거꾸로 돌아갔다”고 했다 패널의 지적을 받고서야 “노무현 관련 수사대상이 된 가족 형님의 (부패) 문제를 다 막지 못했다. 민정수석으로서 무한책임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