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1927∼)
지난 세월 나에겐
오늘 그들의 주소는
하늘나라인 이가 많다
기억들 빛바랬어도
심각성 하나만은
하늘에 닿았고
오늘까지 살아 있으니
그들 저마다
그 시절 여자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손뜨개 털장갑을 선물했으나
나만이 그거나마 단 한 번 못했으니
오랫동안 그분들
손 시려웠을지 몰라
빌고 비오니
그저 영혼 따뜻하게들 계시고
후일 우리 만나거든
그 옛날 장마비처럼 그치지 않던
눈물 얘기도
부디 미소지으며
나누게 되기를……
가슴께가 훈훈히 데워지면서 입 끝이 빙그레 올라가게 하는 시다. 먼발치에서 두세 번 뵈었을 뿐인 처지에 무람한 표현이지만, 요염하면서도 조신한 숙녀 스타일이시던데 참으로 담대하고 의연한 ‘사랑의 여걸’이셨구나! 하긴 인연 하나하나를 성심으로 갈무리하신 듯하니 의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 사람을 성심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세계를 넓히는 것. 세계가 넓어지면 품이 넓어진다.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 말고, 실연도 너무 두려워 말자. 실연은 세계를, 품을 넓힐 기회이노니.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