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건설 제2의 붐… 현장을 가다]<1>대우건설 나이지리아 플랜트공사
대우건설 나이지리아 ‘EGTL’ 플랜트는 대서양 기니 만과 늪지대를 끼고 들어선다. 북쪽에 있는 니제르 강 건너편 늪지대는 지난해까지 델타 주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반군의 거점이었다. 해상 유전의 천연가스가 이 플랜트에서 경유로 전환되면 나이지리아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우건설 제공
2010년 1월 5일 오후. 나이지리아의 최대 도시 라고스에서 160km 떨어진 니제르 삼각주 하류에서 총성이 잇따라 울렸다. 최영민 현장소장은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식당으로 뛰었다. 섬 전체가 공사 현장인 에스크라보스에서 유일한 콘크리트 건물이 식당이다.
놀랐지만 허둥대지는 않았다. 불과 1년 전 반군이었던 주민도 근로자로 일하는 곳이 대우 ‘EGTL(Escravos Gas To Liquid)’ 현장이다. 일부는 하수구로 몸을 숨겼다. 유럽 업체 현장에서 일어난 근로자 폭동이었다. 현지인 2명이 사망했다.
며칠 뒤, 총에 맞은 사망자의 사진은 대우건설 직원의 휴대전화로 전송됐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의 뜻이었다.
고성협 차장은 올봄 휴가 때 한국에서 보험에 가입하려다 위험한 근무지 탓에 거부당했다. 그는 “휴가 복귀 때마다 휴대전화에 ‘위험지역에서 나오라’는 영사관 문자 메시지가 온다”고 소개했다.
○ 노예의 섬이 친환경 경유 생산지로
대우건설 나이지리아 공사 현장에서는 안전모와 고글을 착용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다. 오른쪽에서 네 번째 키가 작은 이가 최영민 현장소장이다. 발주처의 외국인들은 최 소장을 ‘젠틀 자이언트(Gentle Giant·친절한 거인)’라고 부른다. 니제르델타=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현장은 수백 개의 황색 등(燈)으로 덮여 있었다. 에스크라보스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다본 해상 유전의 불기둥을 닮았다. 원유를 뽑을 때 나오는 천연가스를 태우면 불기둥이 되고, 이곳 플랜트를 거치면 친환경 경유가 된다.
아파트 13층 높이의 탑처럼 생긴 장치 30여 개는 약 100억 달러 규모다. 셰브런 현장 관리자인 조너선 리 씨는 “셰브런의 전략과 나이지리아 석유 산업의 미래가 이곳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과거 노예 송출 현장이던 곳에서 기자를 맞은 이는 무장 군인, 군견(軍犬), 원주민 간호원 아저씨 순이었다. “황열병 주사는 맞았죠? 말라리아 약은 드셨을 테고. 열은 없네요.”
직원 숙소인 하우스보트에 들어서니 파도가 만만치 않았다. 한철희 과장은 “하우스보트에 적응하는 데 일주일은 걸린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대우건설이 고용한 3466명(대우 소속 124명 포함)과 발주처인 글로벌 석유업체 셰브런 및 유럽 건설사 직원 등 6000여 명이 일한다. 땅이 좁아 현지 근로자들은 출퇴근을 하고, 한국 직원들은 하우스보트와 섬의 임시건물에 반씩 나눠 산다.
최 소장은 하우스보트 대신 임시건물에서 산다. 그는 33년 건설 인생의 절반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좁은 방은 습기 탓에 곰팡이투성이였다. 그는 가족에게 이곳 얘기를 삼간다. 자신이 너무 험한 환경에서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족이 심하게 걱정을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5일 오전 5시 30분. 검은 피부의 근로자들이 한국 ‘국민체조’로 몸을 풀었다. 이곳 근무는 연중 휴무 없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국민체조를 하던 현지인들이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해까지 ‘니제르 델타 해방운동’ 소속이었다. 총격과 납치를 일삼던 이들이 정부가 포용정책을 펴자 총을 버리고 근로자가 됐다. 대우건설 현장 같은 일자리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최 소장에게 차를 내오던 토페 에페테 씨(25·여)는 유력 부족의 추장 딸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주민들이 지역을 장악한 곳이 많다. 이곳은 이세키리, 이조, 일라제 등 3개 부족이 지배한다. 현지인을 고용할 때 부족의 인구 비례를 지켜야 한다.
5일 최 소장은 발주처로부터 ‘대우 EGTL 현장이 2011년 셰브런 최우수 현장으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은 내년 4월 마무리된다. 만 20세에 입사해 올해로 건설 인생 33년. “이곳 직원들과 멋지게 한 번 더 하고 싶지만 후배들도 소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최 소장의 말에서 짙은 아쉬움이 묻어 났다.
니제르델타=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