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치킨게임… 권력교체기 표심 의식한 강경외교 득세
최근의 동북아시아 국가 간 갈등은 동시다발적 권력교체기와 맞물려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세력 쟁탈전’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동북아 정세가 ‘강경 민족주의의 대결장’으로 요동치는 주된 이유로 각국의 국내정치가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주요국의 정권이 일시에 교체되는 특수상황에서 국내정치가 대외관계를 흔드는 ‘왝 더 도그(wag the dog)’ 현상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각국에서 국민의 표심(票心)을 의식한 포퓰리즘 정치나 내부 분열을 숨기려는 지도부의 권력투쟁이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표출되면서 동북아의 느슨한 지역연대마저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 경제위기로 초래된 실업과 양극화 등으로 팽배해진 사회적 불만과 분노를 ‘외부의 적’에게 돌려 내부 단속을 하려는 각국 정치권의 계산은 민족주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국내적 위기와 분열에 직면한 정부는 대외적 위협을 강조하고, 강경한 접근을 통해 국민 통합과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물론 일각에선 이런 분쟁 양상이 심각한 사태로 비화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과거에도 각국의 국내정치가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쳐 초래된 지역 내 갈등이 간헐적인 격화와 봉합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각국의 리더십 교체기가 지나면 지금의 대립과 마찰은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치킨게임(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파국으로 치닫는 극단적 게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고강도 분쟁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과 중국이 처한 국내정치적 불안정성이 대외관계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게 만드는 정면대결 구도를 가속화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의 경우 지난달 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문책결의안이 통과된 후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고 ‘식물정부’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노다 체제의 민주당 정권은 최근 지지율이 19%대로 떨어졌다. 더욱이 한국 중국과의 영유권 갈등까지 겹쳐 말 그대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상황에 처한 형국이 됐다. 이대론 이르면 11월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반세기 만에 잡은 재집권에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자 민주당은 주변국과의 대외갈등을 ‘정국 반전의 카드’로 적극 활용하기로 작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정치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를 축으로 한 제5세대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권력 내부의 계파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날로 심화됐다. 더욱이 최근 시 부주석이 2주간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권력 핵심부의 충돌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권력교체기의 정치 바람을 타고 동북아에 번지는 민족주의를 진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각국 정치권의 자제와 인내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한 전문가는 “동북아 각국이 국내정치에만 눈이 팔려 ‘배타적 민족주의’를 무기로 서로를 때리는 도발을 계속할 경우 누구도 득을 볼 수 없다는 합의가 필요하다”며 “한국이 외교 역량을 발휘해 이런 공감대 형성을 주도하는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