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또 태풍. 가을날은 온다. 트랙 #27 Earth, Wind&Fire‘September’(1978년)
봄날은 갈 때 서럽지만 가을날은 올 때 서럽다.
후배 M이 있다. 남자다.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그는 가을만 되면 귀뚜라미처럼 같은 울음만 운다. “형…외로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어선지 나도 가을을 타긴 한다. 뼛속 깊이 스며오는 한기와 아침저녁으로 짧아지는 해는 내게 속삭인다. ‘이제 겨울이 올 거야. 빙하기의 시작인지도 모르지. 죽기 전에 짝짓기를 해.’
M의 가을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첫째, 주변에 있는 여자인 친구를 무작정 여자 친구로 만들기. M의 ‘친구 여자’가 M의 ‘여자 친구’로 쉽사리 바뀌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M이 좀 잘생기긴 했다. 나랑 닮았다고들 하니까. M과 나는 음악 취향도 비슷하다. M이 더 전통주의자다. 음악 틀어주는 바에 가면 레드 제플린의 7분짜리 대곡 ‘노 쿼터’나 핑크 플로이드의 23분 31초짜리 대곡 ‘에코스’를 신청해놓고 큰 소리로 따라 불러 나를 포함한 동행들의 빈축을 산다. 우린 가끔 반격도 한다. 내 동기 Y는 팻 메스니의 8분 47초짜리 연주곡 ‘아 유 고잉 위드 미’를, 난 드림 시어터의 23분 6초짜리 대곡 ‘어 체인지 오브 시즌스’를 신청한다. M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 또 다른 곡을 시켜 더 크게 따라 부른다. 그래, M의 둘째 선택은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음악 듣기다.
가을엔 책만큼 음악도 당긴다. 이렇게 비 오는 가을날이면 M과 Y에게 문자 한 통 보내고 싶다. “저녁에 신촌에서 맥주 한잔?” 그러나 M은 지금 여기 없다. 이달 초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이번 가을, 플란넬 셔츠에 스웨터를 껴입은 M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센 강변을 거니는 장면을 상상한다. 지난주, 파리에서 문자가 왔다. “형, 파리에 핑크 플로이드 온다. 이건 못 봤겠지. 움하하하하.”
M아, 현지인들에게 케이맨(K-man·한국남자)의 가을나기 스타일을 보여주렴. 단, 너무 쓸쓸해하진 말고. 어쨌든 9월은 참 특별하구나, M아. 꼭 월말에 내 생일이 있어서만은 아니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