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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고무 인간의 탈옥

입력 | 2012-09-19 03:00:00


19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 감방 화장실 환풍구의 쇠창살 2개가 뜯겨 있고 죄수 신창원이 사라졌다. 탈옥 준비는 치밀했다. 교도소 작업장에서 쇠톱 2개를 신발 밑창 고무에 홈을 내 숨긴 뒤 감방으로 들여왔다. 창살 절단 작업은 소음을 숨기기 위해 음악 방송이 나오는 오후 6∼8시에 했다. 작업이 끝나면 껌으로 절단 부위를 붙여놓아 교도관들을 속였다. 가로 33cm, 세로 30cm 크기의 환풍구를 빠져나가기 위해 80kg이던 체중을 60kg으로 줄였다.

▷탈옥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手)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미국 TV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천재 건축가 마이클은 형 링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자 탈옥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교도소 설계도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긴 뒤 일부러 은행을 털고 감옥에 간다. 그들은 화장실 변기를 뜯어내고 하수구를 통해 탈옥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도 탈옥 얘기다. 주인공 앤디의 감방에는 1940년대 할리우드 섹시스타 리타 헤이워스의 핀업 사진이 붙어 있다. 앤디의 탈옥 소식에 교도소장이 감방을 찾아 핀업 사진을 뜯어내자 앤디가 탈옥을 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 나타났다.

▷1970년대 홍콩에는 ‘고무 인간’으로 불리던 도둑 쉐용선이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특별감방에 수감된 그는 꾀병을 부려 의무실로 실려 간 뒤 의사를 묶고 너비 20cm도 안 되는 작은 창문 앞에 섰다. 그의 곧았던 허리가 구부러졌다. 이어 툭 하는 소리가 나고 어깨가 탈골된 것처럼 축 처졌다가 가슴 앞으로 접혔다. 가슴과 머리가 차례로 안쪽으로 구부러졌다. 고무 인간의 몸이 절반으로 줄어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17일 대구 동부경찰서에서 전과 25범 최모 씨가 경찰관이 조는 틈을 타 가로 45cm, 세로 16cm의 직사각형 배식구를 통해 유치장을 탈출했다. 세로가 성인의 손바닥 길이보다도 3∼4cm 짧은 곳으로 성인의 머리가 빠져나갔다. 범인이 키 165cm, 몸무게 52kg으로 왜소한 체구라고 하지만 믿기지 않는다. 최 씨는 베개에 이불을 덮어놓아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경찰이 착각하게 만들었는데, 이 수법은 영화 ‘알카트라스 탈출’에서 배운 모양이다. 경찰서 유치장 배식구만이 아니라 가정집 보안용 창살도 고무 인간의 사이즈에 맞춰 줄여야 할 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