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등 범죄 당해도 고국 쫓겨날까 신고 못해시민단체 “인권보호 노력 한계… 범죄자 엄벌만이 유일한 해법”
16일 오전 1시경 광주 광산구의 한 원룸. 불법체류자인 캄보디아인 A 씨(25)는 같은 캄보디아 사람인 B 씨(26·여)의 방에 침입했다. B 씨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주먹으로 얼굴을 5, 6차례 때린 뒤 B 씨를 성폭행하고 잠들었다. 술에 취한 A 씨가 방에서 그대로 잠들었지만 B 씨는 7시간 뒤 자신의 여동생(23)이 올 때까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B 씨도 불법체류자여서 경찰에 신고하면 강제퇴거당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2009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국내에 왔다. 남편과 직장 문제 등으로 갈등하다 2년 뒤 결국 이혼했다. 그녀는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공장에서 번 돈을 부모에게 송금했다. 올 2월경 A 씨를 만나 사귀다 최근 헤어졌고 A 씨가 앙심을 품은 것이다.
광주지방경찰청은 19일 A 씨를 구속했다. B 씨는 경찰에서 “고국으로 쫓겨날 것이 걱정돼 신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B 씨가 원스톱 센터에서 치료와 상담을 받도록 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성폭행 피해자이지만 현행법에 따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폭행 가해자는 대부분 같은 처지의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들이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를 못 한다는 약점을 노리며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 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며 “불법체류 여성 근로자를 성폭행한 범인을 법원에서 엄벌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