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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칼럼/신무경]야학은 스펙 쌓는 곳이 아니에요

입력 | 2012-09-21 03:00:00


신무경 고려대 철학과 졸업

“월급은 얼마나 주나요?”

야학에 이런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생 강사를 모집하는 야학 홍보지에 ‘무보수 봉사’를 강조해 넣어도 소용이 없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참빛야학은 1년에 두 번씩 강사들을 모집한다. 그때마다 20∼30명의 대학생이 문의를 해 온다. 관심은 높은데, 그들의 관심이 반갑지만은 않다. “봉사 자격증은 주나요?” “취직 이력에 도움이 되나요?” 씁쓸한 질문이 이어지는 탓이다.

기성세대와 지금의 대학생들이 바라보는 야학은 다른 것 같다. 이전 세대가 야학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면, 대학생들은 머리로 이해하려 든다.

야학 붐은 1990년대에 시작됐다.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은 전초기지를 공장에서 야학으로 옮겼다. 배움 없이 무작정 상경한 이들과 산업화에서 소외된 청소년들이 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야학은 소외된 자들과 깃발을 잃어버린 대학생들의 이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야학은 대학생이 주체가 돼 저소득층 청소년들과 문맹 어르신들에게 교과목과 한글 등을 무료로 강의하는 순수 단체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야학의 전성기가 지난 지금, 교육의 사각지대가 줄면서 야학의 모습은 바뀌었다. 주요 손님이던 청소년들은 사라지고, 늦깎이 주부 학생들이 야학을 찾고 있다. 대학생들의 인식도 달라졌다. ‘월급’ ‘봉사’ ‘증명서’를 운운하는 것은 곧 취업용 자기소개서에 채울 ‘뿌듯한 경력’을 위해 야학을 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취업이 어려운 현실 앞에서 대학생들은 야학을 머리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야학에 대한 인식이 이러니, 야학에서 신임 교사를 뽑는 선발 기준도 까다로워졌다. 참빛야학은 상반기 모집 때 12명의 지원자가 면접을 거쳐 수습 강사로 임명됐다. 어렵게 전형을 통과했지만 얼마 안 가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첫날만 오고 안 나오거나, 몇 번 나오다가 갑작스레 연락이 두절됐다. 한 달간의 수습이 끝나갈 무렵 남은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는 다섯 명뿐이다. 김호준 교무부장은 “야학을 하려는 사람이 순수할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물론 야학을 지원하는 모든 대학생이 스펙에 오염된 건 아니다. 올 8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김성렬 씨는 소속감을 갖고 싶어 야학을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좋은 강사들과 학생들이 있어 그에게 야학은 동아리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야학 강사로 실제로 활동하면서 야학의 참맛을 알게 되는 이들도 있다. 광운대 전기공학과 4학년 김형기 씨는 사실 스펙을 쌓기 위해 야학을 시작했다고 했다. 생각이 바뀐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하루는 저녁 수업시간에 밥을 안 먹었다는 얘기를 농담 삼아 했는데, 바로 그 다음 날 주부 학생 한 분이 떡과 과일을 싸오셨단다. “학생들이 좋아 떠날 수 없게 됐다”는 두 사람 모두 야학에 발을 들인 후 1, 2년 넘게 계속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업 때문에 순수성을 잃어 가는 대학생들에게 아쉬움은 남는다. 야학은 돈을 주는 곳도, 스펙을 쌓는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2년째 야학에서 공부하는 주부 학생 이정원 씨는 “이력서를 쓸 때도, 그 흔한 설문조사를 할 때도 학력을 쓴다는 게 서러웠다”며 야학에 대한 고마움을 눈시울을 적셔 가며 이야기했다. 경제적 형편도, 사정도 어려운 그에게 야학이 없었다면 최종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로 남을 것이다. 못 배워 서러운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공하는 자리가 바로 야학 강사다. 야학에 지원하기 전에 한번쯤 자문해 보자. 순수성이 배제된 마음으로 과연 떳떳하게 강단에 설 수 있을 것인지.

신무경 고려대 철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