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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코리아/어트겅체첵 담딘수렌]한국의 가을하늘은 ‘행복의 아이콘’

입력 | 2012-09-21 03:00:00


어트겅체첵 담딘수렌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

한국의 가을 하늘은 눈이 부시게 맑고 푸르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 3절도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인들은 가을 하늘을 애국가에 넣을 정도로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국과 몽골의 문화적 유사성을 많이 알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두 나라 사람들이 하늘을 외경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몽골 사람들의 하늘에 대한 사랑과 외경이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 왔다. 몽골인은 초원에서 식사를 할 때, 식사하기 전에 반드시 밥과 술을 조금씩 덜어서 좋은 음식을 베풀어 주신 하늘과 땅의 신에게 감사하는 의식을 행한다. 몽골 샤머니즘의 기본은 하늘이다. 몽골인은 항상 하늘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하늘에 기원한다. 하늘을 무조건적인 외경의 대상으로 믿으며 심지어 비나 눈도 하늘이 내려준 특별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몽골 도시지역에서 사람들이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인도 하늘에 대한 외경심이 몽골인 못지않은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비가 온다’고 하지 않고 ‘비가 오신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또 예전에 한국의 어머니들은 집안에 대소사가 있으면 집안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는 장독대에 맑은 물(정화수)을 떠놓고 하늘에 비는 의식을 치렀다.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면 임금이 본인의 부덕함을 탓하면서 빌 만큼 하늘은 신성한 존재였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저 ‘하늘의 뜻’이었다고 하면 이해 관계자 모두 불가피한 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한국인들의 하늘에 대한 외경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하늘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지낸 몇 년 동안 강력한 태풍을 체험하면서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한여름에는 36도를 넘는 열대야가 계속되다가 최근에는 태풍이 세 번이나 연달아 한국을 지나가면서 도시는 물론이고 농어촌에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혔다. 탐스러운 열매들이 힘없이 떨어지고, 논과 밭은 물에 잠기고 양식장이 망가지고…. 멀리서 지켜보는 마음조차 무척 아팠다. 풍요롭고 행복해야 할 추석을 앞두고 큰 어려움을 겪은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몽골은 한국처럼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사계절 건조하다. 이런 몽골에서 유목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상 이변은 ‘주드(Dzud)’라고 하는 겨울철의 이상한파다. 보통 주드가 시작되면 초원이 5∼10일 극심하게 추워져 밤에는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한국 낙농가와 달리 별도의 축사를 짓지 않아 가축들이 초원에서 밤을 지새우는데 이런 한파가 닥치면 유목민의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소, 말, 양 등의 가축이 집단으로 동사하게 된다. 한국의 가을철 태풍이 일 년 동안 땀 흘리며 가꾸어온 농작물을 망치듯이 몽골의 주드는 유목민들이 일년 내내 정성을 기울여 길렀던 가축들을 앗아가 버린다. 이럴 때는 정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 무덥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맑은 가을 하늘과 고운 단풍이 떠오른다. 이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지는 추석이 머지않았다. 일가친척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눌 수 있는 ‘명절’은 생각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이때 한국의 가을 하늘은 행복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날, 아름다운 하늘과 산하를 보면서 모쪼록 모든 한국인이 지난여름의 어려움을 털어내고 행복하고 즐겁게 추석을 지내기를 빌어 본다.

어트겅체첵 담딘수렌 한국외국어대 몽골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