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기형 어린이 3000명에 웃음 찾아준 한국의 천사들
수술실 앞 복도를 오가는 한국 의료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가난 때문에 평소 병원이라곤 가본 적이 없던 그들에겐 이번이 환한 미소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 휴가 대신 봉사 선택한 의사들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봉사활동에 나선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왼쪽)과 의료봉사단원들이 3000번째 수혜 어린이인 레티후엉꾸인 양의 수술 경과를 살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이 때문에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단장)을 비롯해 성형외과와 마취과 의사 17명, 간호사 4명, 의대생과 자원봉사자 등 39명으로 꾸려진 의료봉사단은 8박 9일 동안 매일 30여 건씩 수술을 하느라 말 붙이기가 미안할 정도로 바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위해 컨디션 조절을 하느라 의료진은 일과 후 저녁에도 술 한잔 마음 편히 마시지 못했다.
○ SK텔레콤의 우직한 베트남 사랑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는 시간이 확인해 주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1996년 시작해 한 해도 거르지 않은 SK텔레콤과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봉사는 진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백 단장은 “베트남 봉사활동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SK텔레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은 백 단장의 친형이자 세계적 성형외과 의사인 백세민 박사(전 인제대 서울백병원 교수)가 베트남 의료봉사 활동을 처음 시작한 1996년부터 재정적 후원을 해오고 있다. 외부에 갓 문호를 연 베트남의 가능성을 보고 민간교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인 백 박사 형제의 의료봉사 활동에 드는 비용 전액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SK텔레콤은 그 이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베트남 의료봉사 지원은 단 한 차례도 끊거나 줄이지 않았다. 다른 비용은 줄일지언정 어린 나이에 또래들과 다른 외모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을 돕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현지에서 SK텔레콤과 한국 의료봉사단의 이 같은 태도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베트남 의료진을 이끌고 빈롱 의료봉사에 참가한 군의관 부응옥람 대령은 “수술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한 한국 의료진과 함께 일하는 것은 의사로서 큰 행운”이라며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오래 유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SK텔레콤의 현지 사회공헌활동을 높이 평가해 2008년 김신배 당시 SK텔레콤 사장(현 SK그룹 부회장)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가우호훈장’을 수여했다.
○ 17년 동안 찾아준 3000명의 미소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20주년인 올해 베트남 의료봉사단은 뜻깊은 환자를 맞았다. 태어날 때부터 입술(구순)과 입천장(구개)이 갈라지는 구순구개열을 앓아온, 13개월 된 레티후엉꾸인 양이 17년째 베트남을 찾고 있는 한국 의료봉사단의 3000번째 손님이 된 것이다.
레티후엉꾸인 양의 엄마 쯩티W란 씨(20)는 “갈라진 입술 사이로 우유가 흘러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병원비 때문에 수술을 받을 엄두를 못 냈다”고 말했다. 딸의 얼굴 기형 때문에 시댁과도 심각한 불화를 겪었다는 그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한국 의료진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SK텔레콤은 베트남 어린이 돌보기에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트위터, 미투데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행복한 소셜 기부’ 캠페인도 벌였다. SK텔레콤은 이용자들이 SNS에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를 응원하는 글을 남기거나 게시물을 퍼 나를 때마다 1000원씩 적립해 800만4000원을 모았고, 이 돈으로 가방, 학용품 세트를 사 베트남 어린이들의 새 출발 축하선물로 나눠줬다.
▼ 김정수 SK텔레콤 CSR실장… “사람에 투자해 나무 키우듯 親韓 감정 키울 것” ▼
김정수 SK텔레콤 CSR실장(사진)은 17년째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기업의 사회공헌은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기르는 일이며, 이 사업도 그 일환”이라고 말했다.
의료봉사 지원이 당장은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수술을 통해 미소를 찾은 베트남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한국에 우호적인 이미지를 간직하면 그 과실이 결국 우리나라와 SK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는 “17년간 3000여 명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를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믿음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강세영 SK텔레콤 CSR 매니저(왼쪽),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베트남 의료진 대표 부응옥람 대령(왼쪽에서 네 번째)이 얼굴기형 수술을 받은 어린이들에게 SK텔레콤이 ‘행복한 소셜 기부’ 캠페인을 통해 준비한 선물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의 이 같은 사회공헌활동 방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생각과 닿아 있다. 김 실장은 “최 회장은 ‘기업의 기부만으로 빈곤, 장애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며 해법을 고민해왔다”며 “SK그룹이 기업의 노하우를 소외계층에 전달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할 기업가를 키우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돈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 세운 사회적 기업이 자리를 잡으면 소외계층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고 기업활동을 통해 번 이윤을 지속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SK그룹은 그룹 사회공헌활동의 핵심인 사회적 기업 육성을 국내에서 해외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최 회장은 6월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20 기업지속가능성 포럼’에서 “전 세계 사회적 기업 생태계의 주요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웹 포털 ‘글로벌 액션 허브’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핵심역량인 정보통신 기술을 사회적 기업의 해외 확산에 활용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SK텔레콤이 기업의 사회공헌 확대를 위해 유엔이 만든 글로벌 협의체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회원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빈롱(베트남)=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