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삼층석탑… 모과나무 기둥… 코끝 스치는 모과향…
작은 암자, 구층암을 담은 스케치 안에는 모과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그중 두 그루는 살아있는 나무로 향기로운 과실과 잎을 달고 있다. 세 그루는 승방의 기둥으로 다시 태어나 서까래와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이들이 어디에 있나 잘 찾아보시길.
하긴 장엄한 화엄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부속암자에 9층 석탑 하나 정도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어렵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의 구층암은 오히려 구층까지 올라간 위엄 있는 탑이 없어 편안하고, 육중한 금당이 없어 아늑한 곳이다. 그런 소박함 때문에 구층암 승방을 떠받치고 있는, 다듬지 않은 모과나무 기둥이 더욱 제 빛깔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런 소박함, 편안함, 자연스러움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곳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려는 구층암이다.
○ 살아있는 나무보다 더 생생한 모과나무 기둥
그런 모과나무의 쓰임이 절정을 이룬 모습을 구층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목재로서의 모과나무를 이곳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기둥으로 쓸 수 있게끔 위아래 높이만 맞춰 잘랐을 뿐 나무들은 원래 그 자리에서 자라난 듯, 기둥이되 기둥이 아닌 듯 자연스럽다. 구층암의 기둥은 원목을 가공 없이 그대로 살려 만든 기둥, 즉 도랑주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자연스러움의 절정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모든 암자가 불에 타면서 근처에 있던 수령 300여 년의 모과나무도 함께 화를 입었다고 한다. 절에서 승방을 다시 만들 때 그 모과나무를 잘라 기둥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모과나무 기둥들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자세히 보면 하나가 뒤집혀 있다. ‘나무를 거꾸로 쓰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 속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털털함일까. 나무 하나는 툇마루를 뚫고 자라 올랐고, 뒤집힌 다른 나무 하나는 지붕을 뚫고 내려 자란 것만 같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 걸까. 오히려 작은 불상 1000좌(座)가 있는 천불보전을 올라가는 계단 양옆의 살아 있는 모과나무보다 죽은 모과나무 기둥이 더욱 생동감이 넘치니 그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할 뿐이다.
○ 향기로운 사유의 빛깔
오전 6시, 이른 아침 공양을 끝내자마자 모과 향기 가득한 구층암으로 향했다. 이 시간의 구층암을 꼭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암자로 가는 길 옆 개울은 잦았던 비를 증명하듯 거대한 물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곧 시원한 물소리를 뒤로하고 나지막한 경사의 대나무 숲을 지나 구층암에 다다랐다. 일찍 나오신 할머니 한 분이 멀리 텃밭을 손보고 계시고, 줄에 묶인 하얀 개가 몇 번 짖다 따분해졌는지 이내 다른 짓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요한 천불보전 앞 작은 마당에는 나와 오래된 석등, 잘 펼쳐 놓은 빨간 고추뿐이다. 그리고 모과나무들. 몇 그루라고 해야 할까. 기둥까지 세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소심한 고민도 해 본다. 살아 있는 나무는 올해도 어김없이 모과 열매를 매달았다. 아직은 초록빛이지만 가을의 스산함은 곧 온몸으로 아름다운 향기 풍기는 노란빛 모과를 열심히도 만들어 낼 것이다. 나는 떨어진 모과 열매들을 주워 수돗가 옆 돌 위에 나란히 늘어놓고 그 옆에 걸터앉았다. 지리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더 없이 상큼하다. 금방이라도 모과나무 기둥에도 한가득 잎을 틔워 줄 것만 같은 청명한 아침 공기다. 이내 지붕 밑 서까래에 주렁주렁 열린 노란 모과들을 떠올린다. 향기로운 사유(思惟)의 빛깔로 찬란한 아침 햇살에 구층암이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